블로그 이미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나두미키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365)
Camping (9)
Apple (4)
Marketing (1)
Mailing Article (289)
Music & Book (3)
Travel + Food (2)
BoxOffice 순위 (17)
Issue (21)
Epitaph (5)
지후군 이야기 (7)
Total
Today
Yesterday


나이 50이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주변 사람들이 철이 없다고 놀리지만 호칭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만큼 엄마와 어머니가 주는 뉘앙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라는 존재의 위대함이 크게 느껴진다. 엄마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한없는 위로와 평화를 준다.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외면해도 엄마는 언제나 내 편에 서 줄 사람이다. 무슨 얘기든 할 수 있고, 아무리 힘들어도 그 분만 있으면 삶의 고됨도 다 잊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전화도 안 하고, 찾아 뵙지도 못한다. 먹고 사는 문제에 쫓겨 만나도 다정다감하게 대하지 못한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막상 뵙게 되면 퉁명스럽게 대하는 내 자신을 보곤 한다. 엄마는 언제까지 제 곁에 있을거란 믿음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신경숙의 자전적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소개한다.



내용은 단순하다. 어느 날 엄마가 실종된다. 엄마는 나이도 들고 몸도 성치 않다. 가끔 정신을 놓기도 한다.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 생신을 치르러 서울에 올라온 길에 벌어진 일이다. 자식들이 시골에 내려가는 것보다는 자신들이 서울에 올라오는 것이 자식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올라왔는데 아버지가 지하철 역에서 잠시 한 눈을 팔다 사라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집안은 난리가 난다. 처음에는 왜 서울역에 마중을 나가지 않았느냐며 서로를 원망하다 정신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엄마를 찾아 나선다. 전단지를 돌리고 인터넷 광고를 하고 엄마를 보았다는 사람들을 찾아 온 식구가 사방을 헤맨다. 그러면서 서서히 엄마의 존재를 느끼기 시작한다.



정말 소중한 것은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물, 공기, 평화 같은 것이 그렇다. 늘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다. 엄마라는 존재도 그렇다. 엄마는 늘 자식 주변에 머문다. 학교 갔다 오면 있고, 전화 걸면 있고, 한시도 떨어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귀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여기 주인공들이 그렇다. 엄마의 실종으로 가족들은 엄마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깨닫게 된다. 여러 명의 화자는 나름 엄마를 추억하고 엄마에 관한 얘기를 풀어낸다. 친구처럼 의지하며 살던 큰딸, 엄마의 모든 소망과 꿈을 먹고 자란 큰아들, 자식 기르는 기쁨을 알게 해준 작은딸, 평생 살림을 아내에게 떠맡기고 밖으로만 돌던 아버지…



흔히 딸들은 엄마에게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래요”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럴 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나도 지금의 나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마로 산다는 건 그런거다. 너도 엄마가 되보면 알 것이다.”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서울에 사는 큰딸은 마음과 달리 곱게 말을 하지 않는다. 늘 볼멘소리를 하고 음식을 보내와도 감사해하기 보다 쓸데없이 이런 것을 왜 보내느냐고 윽박지른다. 결혼도 하지 않고 속을 썩힌다. 그러다 엄마의 실종 이후 엄마 심정을 헤아리며 후회한다. 엄마가 얼마나 섭섭했을까? 외로웠을까? 말이 하고 싶었을까? 자신을 서울에 데려다 주고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갈 때가 지금의 자기 나이와 같다는 것도 깨닫는다. 초경을 하기도 전에 결혼 해 다섯 아이를 낳고 애 키우느라 삶이 사라진 여인. 일생이 희생으로 점철되다 실종 당한 여인. 그 엄마에게 자식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였을까? 엄마에게 삶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엄마가 옆에 있을 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딸인 내가 이 지경이었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고독했을까.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그런 부당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아들의 추억도 가슴 아프다. 아들은 엄마의 인생 그 자체였다. 엄마는 큰 아들의 성공에 올인 하지만 아들은 먹고 살기 바빠 그런 엄마를 까맣게 잊고 산다. 그러다 실종 후 첫 직장인 동사무소 숙직실에 졸업증명서를 직접 갖고 올라와 같이 자면서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너는 내가 낳은 첫 애 아니냐. 고단헐 때면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 니 작은 손가락을 펼쳐보군 했어. 발가락도 맨져보고. 그러구 나면 힘이 나곤 했어. 신발을 처음 신길 때 정말 신바람이 났었다. 니가 아장아장 걸어서 나한티 올 땐 어찌나 웃음이 터지는지 금은보화를 내 앞에 쏟아놔도 그같이 웃진 않았을 게다. 학교 보낼 때는 또 어땠게? 네 이름표를 손수건이랑 함께 니 가슴에 달아주는데 왜 내가 의젓해지는 기분이었는지.” 실종 후 자신의 성공을 향해 달리느라 가장 가깝고 소중한 어머니를 등한시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작은 딸도 그런 얘기를 한다. “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 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엄마는 식은 밥을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생선 대가리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늘 밥맛이 없는 걸로 알았어요” 대충 이런 내용의 시를 읽은 적이 있다. 그만큼 우리에게 엄마란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래서 엄마도 인간이란 사실을 잊는다. 하지만 엄마도 인간이다. 이 소설 마지막 부분에 엄마에게도 숨겨둔 사랑이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극적 반전이다. 이런 대목이다. “이젠 당신을 놔줄 테요. 당신은 내 비밀이었네. 누구라도 나를 생각할 때 짐작조차 못할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네. 아무도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다고 알지 못해도 당신은 급 물살 때마다 뗏목을 가져와 내가 그 물을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이였재. 나는 당신이 있어 좋았소. 행복할 때보다 불안할 때 당신을 찾아갈 수 있어서 나는 내 인생을 건너올 수 있었다는 그 말을 하려고 왔소. 나는 이제 갈라요.”



신이 갈 수 없는 곳에 대신 엄마를 보냈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삶이 힘들고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은 분은 엄마를 찾아가 안아주고 그 분의 위로를 받으시길 바란다. 엄마가 안계신 분은 엄마를 생각하며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한근태 대표 kthan@assist.ac.kr

Posted by 나두미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