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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나두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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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강의를 했다. 강의가 끝난 후 나를 초청한 분이 맥주나 한잔 하자고 해서 맥주 집엘 갔는데 초면인 사람도 함께 가게 됐다. 명함을 교환하고 인사를 나누었는데 제법 큰 상장회사 대표다. 한 눈에도 기가 강해 보였다. 들어가자 마자 그 분은 검찰과 감독기관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얘기를 늘어놓는다. 돈줄이 막혀 몇 억을 준비 못하면 며칠 내로 부도처리가 될 것 같다는 내용이다. 대출도 안 되고, 유가증권 발행도 안 되고, 주가도 폭락해 남은 방법은 수단껏 돈을 꾸어야 하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그 동안 자기가 얼마나 열심히 사업을 꾸려왔는지, 금융기관이나 정부에서 얼마나 사업을 방해했는지, 자기가 얼마나 괴로운지에 대해 한 시간 이상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참으로 난처했다. 나는 초청한 지인과 그 동안 회포를 풀러 왔는데 모르는 사람이 전후 사정을 모르는 우리들에게 힘든 얘기를 잔뜩 하니. 그래도 방법이 없어 듣고 있었다. 참다 못한 지인이 이제 늦었으니 집에 가자고 해서 간신히 그 자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얼마나 답답하고 분했으면 모르는 나에게 저렇게 하소연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 저 사람 때문에 즐거운 저녁 시간을 망쳤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무엇보다 집에 오자 마자 나는 완전 파김치가 되었다. 칫솔질 할 에너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사람의 화를 내가 다 뒤집어 쓴 것이다.

버럭이란 별명을 가진 사람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걸핏하면 버럭 화를 내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인물도 좋고 최고 학력을 가진 사람이다. 겉으로는 아무 하자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사람과 몇 달 일을 하면 그런 성향을 알게 된다. 그 사람은 예민하다. 화 내는 기준이 남다르다. 보통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수 있는 일에 대해 그 사람은 화를 낸다. 프로세스를 보면 이렇다.

당사자에게는 화를 내지 않는다. 따라서 당사자는 그 사람이 그렇게 화가 났다는 사실을 모른다. 상황이 끝난 후 주변 사람을 하나 잡고 당사자의 행동이나 말에 대한 자기 느낌을 털어놓는다. 그 말을 듣고 자기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를 물어본다. 동의를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대부분 동의를 한다.

그 다 음에는 점점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화를 낸다. 적어도 한 시간 정도는 그 얘기를 들어야 한다. 동의할 만한 사람을 찾아 대 여섯 번 이런 프로세스를 거친다. 때로는 상사를 압박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을 가만 두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몰아간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동의하고 같이 화를 낸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그를 피하기 시작한다. 그 사람 얼굴빛이 바뀌면 슬슬 주위를 떠난다. 전화도 안 받으려 한다. 그 사람의 화를 뒤집어 쓰기 싫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화를 낼까? 화를 낸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자기 삶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가장 화가 난다. 내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사람인가를 생각하면 견딜 수 없다. 별 것 아닌 일에도 화가 난다. 화를 자주 낸다는 것은 무언가 내 자신에게 화가 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화는 오래 간다. 자신감이 생겨야 사라진다.

교만 때문에도 화가 난다.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화날 일이 많아진다. 눈이 나빠 인사를 안 하는 부하에게 화가 난다. 감히 윗사람을 몰라봐. 모임에서 소개를 안 하거나 한 마디 할 기회를 안 줘도 화가 난다. 감히 나를 몰라보고 지들끼리 놀아라는 생각을 한다. 마중을 나오지 않는다고, 예우를 하지 않는다고, 상석에 안 앉힌다고 화를 낸다.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세상에는 화 낼 일 투성이다. 어설픈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거나 급이 안 되는 사람이 지도자 위치에 올라가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힘 없는 사람은 화 내기가 쉽지 않다. 화 낼 대상도 마땅치 않고 뒷감당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무서울 게 없기 때문에 화를 낸다. 윗사람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명감을 갖고 화 내는 사람도 있다. 저런 찌질한 것들에게 화를 내서 인간개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는 괜찮은데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화가 난다. 내 앞에서 저런 상스런 얘기를 하는 것에 화가 난다. 내가 누군데 감히 내 앞에서 저런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까 맘이 상한다. 정말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화날 일이 많이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화낼 일이 없을까? 그런 일은 없다.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화를 낸다는 것은 내 선택이다. 별 것 아닌 일에 불같이 화를 낼 수 있다.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면서 넘어갈 수도 있다. 화가 났다고 그것을 주변 사람에게 전파해서는 안 된다. 그럴 권리도 없다. 화를 내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인이 가장 큰 손해를 본다. 화가 나면 눈에 보이는 없고 귀도 들리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실수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간다. 화가 날 때는 코비 박사의 세 단계를 생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어떤 화 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잠시 정지하고(STOP), 생각하고(THINK), 선택(CHOOSE)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라다크족의 가장 나쁜 평가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이다. 나 역시 화 잘 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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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원의 궁전

Mailing Article / 2011. 10. 25. 15:03


  
시골 마을에 조제프 페르디낭 슈발이라는 집배원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슈발은 울퉁불퉁한 산길을 가던 중 그만 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걸려 넘어진 돌이 매우 특이하게 생긴 걸 보고는 주워 이리저리 살폈다. 이상한 생김새의 돌이 가진 묘한 매력에 슈발은 왠지 그 돌을 버릴 수가 없어 가방에 넣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가방 속에 편지 말고도 무거운 돌덩어리가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며 그에게 물었다.

"그건 왜 안 버리고 들고 다니나? 많이 걸어 다녀야 하는 사람이 무겁지도 않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오히려 돌을 꺼내 자랑스러운 듯 이야기했다.
"이것 좀 봐봐. 이렇게 예쁜 돌 본 적 있어?"
사람들이 모두 비아냥거리며 웃었다.
"산에 가면 그런 돌이 지천에 깔렸는데 평생 주워도 다 못 주울 거다!"

집으로 돌아온 슈발은 가져온 돌을 보며 '이렇게 아름다운 돌들을 모아서 성을 만들면 얼마나 멋질까'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 매일 편지를 배달하면서 예쁜 돌을 찾아다녔다. 얼마 후, 그는 제법 많은 양의 돌을 모을 수 있었다. 그래도 성을 쌓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는 외다리 수레로 편지를 배달하면서 수레에 돌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후 그는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낮에는 우편배달과 돌을 나르느라 고생이었고, 밤이면 가져온 돌을 쌓느라 또 고생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슈발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정신이 나갔거나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20여 년이 지난 후, 그가 살고 있는 외진 지역에 삐뚤빼뚤한 돌을 쌓아 만든 정취 가득한 성이 탄생하였다. 이슬람 사원의 모습, 힌두교 풍, 기독교 풍 등등... 이 지역 사람들은 외골수에다 말이 없는 이 집배원이 어린 아이처럼 모래성 쌓기 놀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1905년, 프랑스의 한 신문 기자가 그 동네를 지나다가 우연히 그가 돌로 만든 성을 발견했다. 그곳의 풍경과 멋진 조화를 이룬 성을 바라보며 그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후 슈발과 성을 소개하는 기사가 신문에 실리자 슈발은 일약 유명 인사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특히 당시 명성이 자자했던 파블로 피카소도 이곳을 구경하러 왔다.

지금 이 성은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명승지 중 하나가 되었다. '집배원 슈발의 꿈의 궁전'이 바로 그곳의 명칭이다. 이 성의 돌들에는 당시 슈발이 새겨놓은 말들이 아직도 또렷이 남아 있다. 그중 하나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나의 꿈을 간직한 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고 싶다."

이 문구가 새겨진 돌이 바로 슈발이 걸려 넘어졌던 첫 번째 돌이라고 한다. 

참고도서 : 위즈덤 스토리북(윌리엄 베너드, 일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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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칭찬을 들으면 그것만 먹어도 두 달은 살 수 있다." 마크 트웨인이 한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서 받는 칭찬이나 인정에 기대고 있다면, 정작 우리 자신이 가야할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느라, 정작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일에 매달리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남들에게서 받는 인정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시기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훌훌 털고 일어나 홀로 나아가야 한다.


존 맥스웰은 성공학 전도사가 되기 전에 목사로 활동했다. 20대 초반에 목사직을 맡기 시작한 그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최선을 다했고, 그 노력에 대해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 하지만 주위의 칭찬은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정을 받기 위한 노력은 끝없이 에너지만 쏟아 붓다가 결국 그를 탈진시키고 만다. 하지만 그것은 유익한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그때 나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한 가지 얻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인정은 변덕스럽고 덧없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평생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가치 있는 일과, 남에게서 오는 칭찬을 맞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들 안'에 속해서는 나의 운명을 동시에 따를 수 없다."

1995년에 그는 자신에게 '잘 나가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무한정 부여하던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미국에서 교파가 가장 크고 가장 유명한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스카이라인 웨슬리안 교회의 수석 목사직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목사로서 수많은 교인들의 관심을 즐기며 여생을 편안히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만의 길을 걷기 위해 그곳을 떠났다. 그 후 그는 리더십과 자기계발에 대한 강연을 이어나갔다. 그제야 비로소 그는 남들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로 홀로 설 수 있게 되었다.

회사에서 상관이나 동료에게서 칭찬을 듣거나 인정을 받으면 뿌듯한 느낌을 받는다. 부모의 인정을 받은 아이들은 뭔가를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곳저곳에서 어떤 식으로든 받는 칭찬은 무시할 수 없는 기쁨이다. 스승이나 멘토에게서 받는 인정은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충만한 보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은 곧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칭찬을 해주는 상대의 삶을 당신이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한 수도자가 있었다. 그는 정체 모를 병에 걸려 몇 해 동안을 앓아누웠다. 수도원은 그를 살리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썼다. 하지만 병세는 여전했다. 조금 나은 듯 하다가도 이내 병은 도지곤 했다. 온갖 치료 방법을 동원했지만, 그 수도자를 구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도원장이 찾아와 뜻밖의 말을 건넸다.

"나는 이 수도원의 모든 수도자들과 우리를 후원하는 모든 신도들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왔소. 당신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그 모두를 대표해, 나는 당신에게 죽음을 허락하기 위해 왔소. 이제 당신은 회복되지 않아도 좋소."

그 말에 수도자는 흐느껴 울었다. 그동안 그는 병에서 회복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건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이라기보다는, 그의 회복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수도원 동료들과 원장 그리고 신도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병에서 낫지 않는 것은 그에게 엄청난 죄책감이자 부담이었던 것이다. 그때 수도원장이 한 말은 그런 기대에 더 이상 부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언과 같았다. 그 수도자의 눈물은 자유를 얻은, 알 수 없는 안도감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동안에는 그 어떤 치료법도 듣지 않았는데, 병이 서서히 차도를 보인 것이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는 그들의 바람대로 행동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기대 안에 자기 자신을 가둔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수도원장의 말은 그 수도자의 마음을 자유롭게 했고, 자유로운 마음은 몸에게도 자유를 허락했으며, 이는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당신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고 있고, 그 사실을 당신이 분명히 알고 있다면, 굳이 칭찬을 구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남의 칭찬을 얻을 일을 찾아 하고 있다면, 그때 당신은 누구인가. 자신의 존재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당신에게 칭찬을 베푸는 사람이 사라질 때 당신마저 함께 사라지는 게 아닌가. 냉정하게 말해서 칭찬은 그것을 말한 사람의 것이지, 그것을 받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명성과 인기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는 사람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그걸 착각하고, 자기가 받았으니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게 되면, 인기가 사라지면서 좌절하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심지어 목숨을 저버리기까지 하게 된다.

만약 스스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이 당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남들의 평가는 하루아침에 뒤집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자존감도 한 순간에 뒤집어질 수 있는,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신세가 된다. 하지만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존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자존감을 지닌 사람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다. 어디서 무슨 대단한 상을 준다고 해도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설사 노벨상을 준다고 해도 마음이 들뜨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퀴리 부인은 영국왕립아카데미에서 받은 금메달을 어린 딸이 가지고 노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이를 지적하는 친구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난 아이에게 명예란 그저 장난감과 같은 것임을 일깨워주고 싶어. 명예는 잠깐 가지고 놀 수는 있지만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는 거잖아. 반짝 명예에 우쭐해하다 보면 아무것도 해낼 수 없어."

남들이 인정해주기를 바라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에 충실한 사람은 비로소 죽지 않는 순수한 열정을 발견한다. 영화배우 러셀 크로는 말했다. "나는 대본을 보고 온몸이 떨리지 않으면 영화를 찍지 않는다. 나는 내가 열정을 가진 영화만 만든다." 화성에 로봇을 보냈던 미항공우주국의 천재 과학자인 데이브 래버리는 이렇게 말했다. "열정이란 말로도 내가 느낀 것을 충분히 묘사하는 데 부족하다. 나는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나를 깨우고, 나를 흥분시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 때문에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하러 나가며, 밤에는 잠자리에 들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켄터키 주 루이빌에 사는 순찰대원 조 마틴은 주차장 미터기에서 동전을 수거하는 일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소년들에게 권투를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열두 살짜리 흑인 소년이 울면서 체육관에 들어왔다. 조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새 자전거를 도둑맞았다고 하면서 훔쳐간 사람을 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날부터 소년은 체육관에 와서 혼신의 힘을 다해 운동을 했다. 조는 소년의 재능을 알아보고는 "넌 최고야!"라고 얘기했다. 조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던 소년은 권투 선수가 되기 위해 온 마음을 쏟았다. 나중에 그들은 올림픽 경기에서 최고의 영광을 얻었다. 정말 '최고'가 된 것이었다. 이 소년은 사람들에게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무하마드 알리는 애초에 코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또 자신의 복수를 위해 권투를 배웠다. 하지만 어느덧 권투는 자기 자신만의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는 단순히 복수를 하거나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싸우는 정도를 넘어섰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 링 위에 섰던 것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누군가의 지도를 받게 되고, 지도해주는 사람의 기대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래서는 안 된다. 어느 순간에는 그런 기대감을 딛고 일어나 자기 자신만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부모의 뜻대로 진로를 결정하거나 배우자를 골랐을 때, 반드시 만족스러운 결과가 기다린다는 보장이 없다. 퍽이나 운이 좋아야만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가 벌어진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부모가 당신에게 자신들의 기대를 전혀 심지 않은 상황에서, 당신이 저절로 알아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세대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관심사가 다른데 말이다.

사회의 가치 기준에 따르는 것은 안전한 길로 보인다. 그것은 물질적인 성공과 정신적인 평안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거기에는 생명이 없다. 당신 자신만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벅찬 생동감을 느낄 수 없다. 겉으로 당신은 생활에 필요한 경제력을 갖추고 사회적인 지위와 체면을 유지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 충만한 삶의 감정이 함께한다는 보장은 없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껍데기의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남들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모르고 산다면 그나마 괜찮지만, 어느 날 불현듯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이 단 한 순간이라도 피어난다면, 당신은 더 이상 그 상태의 삶에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오랜 노력의 결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유명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었다. 미국 인명록에 2년 연속 등록되는 영광도 누렸고, 학술계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도 즐겁지가 않아요. 난 이 일이 끔찍하게 싫거든요. 그저 편안히 다리를 꼬고 앉아 아무 일도 안 하고 싶지만, 감히 엄두를 낼 수가 없어요. 사실 예전엔 그저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말이에요."

당신이 누구인지 다른 사람에게 묻지 말라. 그것은 당신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평가가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알고 보면 모든 평가가 다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간혹 아주 드물게 당신에 대해 당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의 모습을 알아냈다 해도 그것은 당신의 앎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의 남의 지식이며 죽은 지식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깊이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뭔가를 배울 때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평가를 받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 과정을 통해 당신은 더욱 숙련된 실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당신의 존재에 대해, 당신의 기쁨에 대해, 당시의 가치에 대해 평가를 구하고 그에 따른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그 평가에 종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자유롭게 태어나서 종속되기를 선택한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아간다. 그 창살은 남들의 '인정과 평가'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기 자신이 그 창살을 하나하나 만들어 스스로 자신을 가두게 된다. 물론 삶의 생존 방편을 얻기 위해서는 남들의 인정을 받는 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돈벌이의 문제이고, 지금 말하는 것은 삶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다. 돈이 생존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삶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당신이 오직 세상의 하나뿐인 당신이 되기로 하고 굳건히 그 길을 걸어갔을 때, 당신에 대한 사람들의 인정이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며, 거기에 생존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도 동시에 존재한다.

 

루이스 캐롤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내가 어떤 단어를 말할 때, 그 단어는 내가 선택한 의미가 있게 되는 거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러자 앨리스가 말했다.

"그렇게 되면 단어 하나에 아주 여러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 문제가 되겠군요."

"그렇게 되면 누가 주인이 되느냐, 그게 문제가 되는 거지. 그게 다야."

남들이 당신에게 사용하는 칭찬의 단어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 설사 그게 비난의 단어라 해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하는 말은 물론 당신의 듣는 말에 있어서도 당신이 주인공이 되도록 하라. 당신이 주인공이 아닌 말은 그냥 흘려보내라.

또한 남들이 인정하는 일보다, 당신이 인정할 수 있는 일을 하라. 남들의 칭찬에 기대지 말고 당신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칭찬할 수 있도록 행동하라. 남들이 당신에 대한 칭찬을 거두는 날은 언제고 찾아올 수 있지만, 스스로 자신에게 건네는 칭찬은 다함이 없을 것이다. 당신 자신이 곧 '인정'이자 '칭찬'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에게 그 무엇보다 값진 선물인 것이다.

물론 칭찬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칭찬을 베풀라. 당신에게 주어지는 칭찬은 기쁘게 받아들여라. 하지만 쓸데없이 칭찬을 남발하지 말라. 그들만의 삶을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 역시 칭찬에 기대지 말라. 칭찬은 길을 갈 때 주변에 피어 있는 꽃과 같다. 꽃이 아름답다고 그 옆에 머물게 되면 목적지로 향할 수 없다. 그 꽃을 꺾어 간직하고자 해도 이내 시들고 말 것이다. 그저 흔들림 없이 멈춤 없이 당신 자신의 길을 가라. 거기에야말로 칭찬의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만족감이 존재한다.

헨리 데이빗 소로는 이렇게 말했다. '동료와 발을 맞춰 행진하지 않는 것은 다른 북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박자건 얼마나 멀리서 들려오건 자신이 들은 음악에 발을 맞춰라.' 모두가 남들의 칭찬에 발을 맞추더라도 당신은 당신이 들은 북소리에 발을 맞추어 당신만의 길을 가라. 그곳에 진짜 삶이 있다.

글_ 조원기(wk@happy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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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 관리인

Mailing Article / 2011. 10. 25. 15:01
버스정류소 옆에 있는 자동판매기 앞에서 한 남자가 자판기를 두르리며 화내고 있었다. 지나가던 학생이 왜 그러냐고 묻자 그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놈의 기계가 내 돈만 먹고 음료수가 나오지 않아.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나올까 해서 치고 있어. 관리인에겐 여기 적힌 연락처로 전화했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질 않아."

그러자 그 학생은 관리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말했다.

"지금 자판기에서 동전이 쏟아져 나와 사람들이 가져갑니다."

그러자 5분도 안 되어 관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참고도서: 아니면, 뒤집어라! (정철화, 좋은책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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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두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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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생명, 생명보다 소중한 목숨을 건 사랑, 그런데 사람들은 자유를 위해 이 둘을 포기하려 한다. 그러나 생명과 사랑을 벗어난 자유는 무의미한 말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선택이며, 그만큼 힘겨운 멍에이기 때문이다. 개인은 자기 행동과 사회적 관계를 판단하고 선택하면서 양쪽 모두를 책임져야 한다.

세계적인 기업 구글의 업무 환경이 부러운가? 반바지 차림으로 회사를 다니고,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을 해도 상관없고, 남들보다 평균적으로 20%정도 더 많은 자유 시간을 누린다. 그러면서도 회사로부터 높은 연봉과 맛있는 식사를 제공받는다. 그러나 이 자유의 뒷면을 생각해보라, 거기에는 구글의 높은 문턱, 즉 마라톤식 고용이 있다. 회사는 끊임없이 개인에게 성과를 요구한다. 개인에게 자유를 주는 대신 업적을 가져 오라는 것이다. 개인이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책임 있는 선택이다. 그만큼 힘에 겨운 멍에인 것이다.

진정한 자유는 탈출이 아니라 선택이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이유로 결정한 것인가? 이러한 갈등과 방황이 있는 뒤에야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 아스팔트 길 위에서는 마음껏 달릴 수 있다. 자유가 보장된다. 그러나 늪에 빠지면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다. 자유가 구속된다. 자유와 제약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조직을 아스팔트 길 같은 단단한 반석으로 만들어 구성원들이 마음껏 뒤어오를 자유의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 이것이 바로 경영자의 책임다.

그러나, 자유는 결코 방종이 아니요, 책임이다.
성장의 책임자는 본인이지 조직이 아니다. 조직과 더불어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따져보아야 한다. 


피터드러커의 경영 블로그(동시야 지음, 글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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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환하게 전등 빛을 밝혀놓는 한 상점이 있었다. 이 상점의 전등은 시간이 흘러도 밝기가 약해지지 않았고, 또 단 한 번도 수명이 다해 깜박거린 적이 없었다. 이상하게 여긴 사람이 상점 주인에게 물었다.

"당신 상점에선 도대체 어떤 전구를 쓰기에 그렇게 늘 환한 겁니까?"

상점 주인이 대답했다.

"남들과 똑 같은 전구를 씁니다. 수명이 다하거나 고장이 나는 것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그때마다 즉시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뿐입니다."


참고도서: 레몬차의 지혜(루화난, 달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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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인 세일즈맨 빌 포터의 성공 비결
"나는 그냥 문을 두드리고 기다렸다"

 

뇌성마비 환자로 태어난 빌 포터는, 오른손을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굽은 등은 늘 아팠으며,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 그가 선택한 일은 그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세일즈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그나마 멀쩡한 두 다리가 쉴 새 없이 고객들의 집으로 그를 데려다 줄 수 있었고, 그가 세일즈맨으로 성공하는 데는 그 이상의 비결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몇 번을 더 말해야 하죠? 다시는 오지 말란 말이에요, 절대로!"

쿵 하고 문이 닫힌다. 그 문을 뒤로 하고 한 사나이가 옆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 손에는 상품 설명서들이 든 서류가방을 든 채로 약간 구부정하게 걸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다 보면 가파른 언덕길도 종종 올라가야 했는데, 뇌성마비자인 그로서는 쉽지 않은 걸음이다. 그뿐 아니라 빠르고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도 큰 문제였다.

하지만 그는 끝없이 거절을 당하면서도, 매번 첫 번째 고객을 방문한다는 마음으로 문 앞에 섰다. 지난번에 냉대를 당한 고객의 집이라고 해서 건너뛰는 법이 없었다. 두 번 다시 오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틀림없이 내가 잘못 들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이 끈질긴 세일즈맨에게 조금이라도 체념의 느낌을 보이는 고객은 물건을 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고객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있든 없든 상관이 없다. 이 세일즈맨, 바로 빌 포터의 충실한 고객이 되고 마는 것이다.

한번은 빌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여성 고객이 집에 있다가 빌이 오는 것을 보고는 뒷문 쪽으로 숨었다. 하지만 빌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집에 계신 거 다 압니다." 하고 소리쳤다. 그 고객은 들통 난 게 창피해서 더 많은 물건을 살 수 밖에 없었는데, 나중에 집에 돌아온 남편이 그 사실을 알고 크게 화를 냈다. 그때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 적극적이고 끈질겨서 도저히 안 살 수 없었어요." 남편은 환불하려고 빌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빌은 차분하게 "물건을 써보고 만족하지 못하면 전액 환불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부부는 빌의 충실한 단골 고객이 되고 만 것이었다.

 

최악의 지역에서 세일즈를 시작하다

빌 포터가 태어났을 때 처음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 아기는 오른손을 제대로 펴지 못했고, 등이 구부정했다. 그리고 첫 돌이 될 즈음에 뇌성마비라는 진단을 받았다. 부모는 좌절했고, 주위 사람들은 아이를 전문시설로 보내라고 강하게 권했다. 하지만 부모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특히 어머니는 아이를 지키고 정상적으로 키우기 위한 전사가 되기로 굳게 결심했다. 자신의 아이가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사회의 편견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 조금 자란 아들에게 어머니는, 뇌성마비는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가는 방법이 아니라 네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어디냐 하는 것이란다." 아들에게 용기를 북돋기 위해, 어머니는'끈기'라고 쓴 종이쪽지를 아들의 옷 주머니나 도시락 가방에 몰래 넣어두곤 했다.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한 빌 포터에게는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부모가 더 이상 그를 돌봐줄 수 없을 때가 올 것이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삶을 꾸려나갈 일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뇌성마비가 있었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직업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었다. 먼저 그는 이웃집 정원관리를 시작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그건 보수도 높지 않았고 그다지 보람 있는 일도 되지 못했다. 게다가 그의 신체는 노동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뇌성마비연합 소속 세일즈맨으로 잠시 일하기도 했으나, 벌이가 시원찮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그는 매일 수십 명씩 늘어선 줄 끝에 섰다. 고용지원 상담사를 만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상담자들은 친절하게 일자리를 주선해 주었다. 거기에서 빌 포터는 대형 약국에서 재고를 담당하는 일을 구했다. 하지만 뇌성마비 때문에 손이 말을 잘 안 들어 선반에 놓인 물건을 자꾸 넘어뜨리자 하루도 못 채우고 해고되었다. 이어 한 매장의 계산원이 되었는데, 금전출납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그만두어야 했다. 역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손 때문이었다. 구세군에서 화물적재업무를 하게 되었지만, 자신의 신체 조건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이라는 것 금방 깨달았다. 재향군인재활센터에서 전화 응대를 하는 일이 주었을 때는 언어장애 때문에 항의를 받아 그만두어야 했다. 세상에는 그가 할 만한 일이 더 이상 없는 듯 했다. 고용지원센터에서도 더 이상 일자리를 주선해주지 않았다. 그때 어머니는 아들을 위로하기보다는 그 상황을 보다 명확히 해주었다.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다시 고용지원센터에 가서 너의 취업의지를 분명히 보여줄 것인지, 기가 죽어서 집에 틀어 박혀 있을 것인지는 네가 결정할 일이야."

빌 포터는 직접 구인광고를 뒤져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하지만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을 고용하겠다는 곳은 없었다. 갑자기 전화를 끊어버리는 곳도 있었다. 그는 그나마 자신이 세일즈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사실 그 이외의 일은 하고 싶어도 해낼 수 없는 것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일즈 회사들은 빌 포터가 세일즈를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 세일즈 회사에 지원하자 면접관이 직접 찾아오더니 빌을 보고는 놀라서 그대로 돌아가 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지치지 않고 계속 일자리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다른 길이 없었다. 장차 독립할 날을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왓킨스라는 회사에서 일자리를 주었는데, 사실상 그건 일자리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왜냐하면 빌에게 할당한 지역은 세일즈가 불가능하게 보이는 가난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포틀랜드에서 최악의 지역이었다.

실제로 빌은 그 지역을 발이 부르트게 돌아다녔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일자리가 생겼다는 기쁨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생각 끝에 매니저에게 자기 동네가 있는 지역을 달라고 요청했다. 매니저가 거부했지만 빌은 일주일 뒤에 다시 찾아가 지역을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의 판매실적이 올라가면 그만큼 매니저의 몫도 늘어난다는 점을 강조했더니, 매니저가 마지못해 허락해 주었다. 그것은 빌에게 성공의 시작이었다. 새 지역에서 그는 석 달 만에 포틀랜드 지역의 판매왕이 되었던 것이다. 매일 여덟 시간씩 쉬지 않고 돌아다니며 그 지역의 모든 가구들을 방문한 결과였다.

 

끈질긴 세일즈맨은 아무도 거부하지 못한다

뇌성마비로 인해 빌은 신체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다. 그래서 일을 빠르게 처리하지 못했다. 멀리 갈 때도 자동차를 몰 수 없었다. 빨리 이동하고 빠르게 설명해서 시간을 절약할 수가 없었기에 빠르게 실적을 높일 수가 없었다. 그에게 직업의 선택권이 없었듯이, 세일즈맨으로서 성공하기 위한 무기에도 선택권이 없었다. 그는 오직 두 다리에 모든 힘을 실었다.

그는 매일 아침 4시 45분에 일어났다. 몸이 자유롭지 않아서 일하러 나갈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7시 20분이 되면 시내로 나갈 버스를 탄다. 시내에 도착하면 자신이 활동할 지역으로 가는 버스를 8시 30분에 탄다. 9시에 버스에서 내리면 그때부터 세일즈가 시작된다. 그는 마치 선거유세를 하듯 가가호호 방문하며 상품을 설명했다. 1시 30분이 되면 도시락을 꺼내 먹었고, 한 시간 후에는 정확히 다시 일을 시작했다. 집에 돌아오면 주로 냉동식품을 꺼내 저녁을 해먹었고 11시가 되기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30년 동안 빌이 해온 생활이다.

세일즈를 다닐 때, 그에게는 어떤 곳도 예외가 없었다. 구매를 거절하는 곳이 보통이었지만, 낙담하지 않고 꾸준히 다시 방문했다. 자신의 구역을 한번 다 도는 데 석 달이 걸렸는데, 이는 모든 집이 석 달마다 빌이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는 뜻이었다.

하루에 여덟 시간 동안 15km를 걸으며 100여 곳의 집 문을 두드렸는데, 운이 좋아야 열 군데 중 한 곳에서 물건을 사주었다. 물건을 사고말고는 고객 마음이었다. '다시는 절대로 오지 말라'고 말하는 것도 고객 마음이었다. 하지만 석 달마다 그 집 문을 두드리는 것을 막을 길은 없었다. 마당에 차가 주차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사람이 집에 없을 거라고 미리 단정하지 않았다. 고객이 명확히 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는 이상 그는 일단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린다. 현재 빌의 고객 500여명은 그런 과정을 통해 확보할 수 있었다. 이중 35명은 구매를 적극적으로 거부했다가 단골로 돌아선 경우다. 일부 고객들은 자신들에게 사실상 별 쓸모가 없는 제품을 사면서도 '살 게 없다'고 말하지 못한다.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이 끈질긴 세일즈맨이 설사 말이 어눌하다 해도, 몸동작이 어색하다 해도 물건을 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빌 포터가 세일즈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세상을 떴다. 그리고 한창 일하던 중에 어머니가 알츠하이머 증세를 보여 결국 요양원으로 가야 했다. 즉 그는 혼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는 아침마다 그의 구두끈과 넥타이를 매주고 커프스 단추를 잠가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생각 끝에 그는 시내에 있는 호텔에 들러 그곳의 벨보이에게 이를 부탁했다. 다행히 벨보이들은 선뜻 도움을 주곤 했고,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으려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일기예보에 다음날 32도가 넘을 거라고 나오면 '그 정도면 선선하지'라고 생각했다. 폭설로 길바닥이 빙판이 될 거라고 해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갔다. 오히려 날씨가 안 좋은 날이야말로 사람들이 다들 집에 있기 때문에 세일즈에 더없이 좋다고 여겼다. 감기나 독감 혹은 관절염, 두통은 그가 거리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되지 못했다. 넘어지는 바람에 턱이 깨져 피가 흘렀을 때도 그는 병원에 들렀다가 다시 일하러 나갔다.

한번은 정말 큰 사고가 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집 앞에서 발을 헛디뎌 차도로 넘어졌는데, 그만 지나가던 차에 치였던 것이다. 병원으로 옮겨져 상처를 치료한 그는 다시 일하러 나갔다. 그런데 엉덩이에 엄청난 통증을 느끼며 쓰러졌다. 다시 병원에 갔더니 엉덩이뼈가 골절된 사실이 밝혀졌다. 퇴원 후에는 호흡곤란을 겪는 등 상태가 더 안 좋아져서 결국 요양원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때 그는 완전히 낙담했다.

다행히 몇 달 후 상태가 호전되어 집으로 돌아온 그는 한 달 후에 다시 일하러 거리로 나섰다. 하지만 아직 그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거리에서 고통 때문에 길바닥에 주저앉았던 것이다. 그때 그는 집에서 전화판매를 시작했다. 그의 충실한 단골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주문에 흔쾌히 응했고, 판매 성과는 더 좋아졌다.

 

삶을 변화시키는 결정이란

그의 이야기가 기사로 소개되고 TV 전파를 타게 되자, 많은 곳에서 그의 음성을 직접 듣고 싶어 했다. 강연섭외가 쏟아졌던 것이다. 한번은 강연 의뢰를 받았는데, 주최측이 요청한 강연 주제가 '장애를 딛고 최고 세일즈맨으로 성공한 비결'에 대한 것이었다. 그를 돕는 직원인 셸리가 '장애가 되는 것을 말해 달라'고 하자 빌은 말할 게 없다고 했다. 그래도 자꾸 '장애'에 대해 물어보자 빌이 화내며 말했다. "도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는 거야? 장애가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다른 질문을 해." 물론 그에게는 장애가 있었다. 정상인과 비교해서, 뇌성마비, 근육공조 장애, 등의 통증, 언어 장애가 있었다. 하지만 정말 그는 그런 것들이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이 자신이 일을 잘 해나가는 데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뇌성마비가 장애가 되었나요? 어머니의 죽음이 장애가 되었나요?" 그러면 그는 대답한다. "저는 어떤 장애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내기 위해 굳이 애쓰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고객을 만나 주문은 받지만 배달은 다른 사람을 시킨다. 차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정원관리는 정원관리사에게 맡겼고, 가사 도우미가 집을 청소해준다. 아침마다 구두닦이에게 구두를 닦으며 구두끈을 맸고, 넥타이와 커프스단추는 벨보이에게 부탁했다. 위축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기꺼이 그렇게 했다. 다만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는 것, 즉 고객방문은 철저히 자신만의 몫임을 안다. 고객의 주문내역을 작성하는 것도 절대로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그것도 컴퓨터가 아닌 타자기를 고수한다. 다른 사람이라면 몇 분이면 다 처리할 주문서를 그는 몇 시간씩 걸려서 직접 세세하게 정리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파는 상품에 대해 완벽하게 알고 있고, 고객들의 구매습관, 취향, 물건이 떨어질 시기 등도 자세히 알고 있다. 이처럼 자신이 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완벽을 기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은 충분히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이제 그는 강연만으로도 삶을 꾸려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세일즈 전선을 떠나지 않는다. 세일즈는 그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장애를 안고도 최고의 세일즈맨이 된 그의 삶은 그 자체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대한 결정만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내리는 사소한 결정입니다. 한 번 더 웃어주고, 손을 흔들어주고, 아픈 친구에게 전화해주고, 그가 요청할 때나 요청하지 않을 때나 누군가를 돕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등 작은 행동이 삶에 큰 변화를 가져다줍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당신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수천 명의 삶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수백, 수천 명이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그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자신이 과연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망설이는 분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럼요,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글_ 이원호(ejcoss@dreamwiz.com)

참고도서 : 도어 투 도어(셸리 브레이디, 시공사), 사진제공 :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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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삶의 파도를 타고 넘는 지혜

어떤 사람도 늘 행복하거나 늘 불행하지는 않다. 행복 속에 불행이 있고 불행이 행복을 싸안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삶이란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존재하는 팽이와 같은 것으로, 팽이가 돌면서 우리에게 어느 쪽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우리는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기도 한다. 만약 어느 순간에도 우리가, 절대적인 행복이나 불행에 기대지 않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면, 쉽게 마음이 흔들리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지는 않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한 반독점법 위반 소송에서 미국 연방 정부 측 변호를 맡은 데이비드 보이스에게는 난독증이 있었다. 그래서 길고 복잡한 단어를 피할 수밖에 없었는데, 의미를 알고 있는 단어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할까 불안해서 일부러 어려운 단어의 사용을 피했다. 즉 단순한 단어들을 사용했는데, 그 결과 그의 주장은 매우 명쾌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 즉 난독증은 그에게 약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그는 정중하지만 끈질긴 질문으로 빌 게이츠를 녹초로 만들었으며, 정부 측 주장을 명확하게 설명하여 재판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데이비드 보이스의 난독증은 분명 타고난 것이었을 테고, 성장하는 동안 그는 자신의 단점으로 인해 어떤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난독증은 단점이면 단점이었지 결코 내세울 요소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난독증은 그에게 뛰어난 변론을 가능하게 한 힘이 되었다.

이처럼 어떤 장점이나 단점, 환경적 요소, 여건 등은 그 자체로 그것의 가치를 판단할 수는 없다. 그것의 가치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명성을 떨치기 전에 시골에서 양털을 깎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털 깎는 솜씨가 형편없어 목장 주인에게 호된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어느 날 그는 친구들과 함께 목장에서 멀지 않은 토마스 루시 경의 정원으로 몰래 숨어들어가 노루사냥을 하다가 붙잡히고 만다. 하루 동안 감금되어 심한 곤욕을 치르고 겨우 풀려난 셰익스피어는 이튿날 루시 경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시를 지어 정원 문에 붙여놓았다. 이를 본 루시 경은 분노했고 셰익스피어를 고향에서 추방해버리고 말았다. 그 일은 아직 작가로서 피어나지도 못한 셰익스피어에게 큰 불운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향을 등진 셰익스피어는 런던으로 넘어가 연극 대본을 쓰게 되었고, 결국 세계적으로 유명한 극작가가 될 수 있었다. 그가 글에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는 하나 고향에만 있었다면 작가가 아닌 다른 길을 걸었을 지도 모르는 것이다.

당신에게 벌어진 어떤 일이, 당장은 몹시 실망스럽고 당신을 좌절하게 만드는 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당황스러운 일,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엉뚱한 사건, 절대 겪고 싶지 않았던 경험, 이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일도 종종 상황을 더 좋게 만들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미국 최고의 외교전문가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친구의 신랄한 비판에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친구에게서 이런 질책을 들었다.

"벤자민, 자네 정말 어쩔 수가 없는 사람이군. 자넨 몇 번씩이나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호되게 공격했네. 자네 의견은 너무 고귀해져서 이제 그 누구도 받아들이기 어렵게 됐어. 친구들마저도 자네와 함께 있으면 불안해하지. 자네는 아는 게 너무 많아 더 이상 아무도 자네를 가르칠 수 없게 되었네. 어느 누구도 감히 자네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려고 하지 않지. 그러니 이제 더는 새로운 지식을 얻지 못하게 되었네. 자네의 지식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말이야."

프랭클린에게 그 말은 매우 큰 충격이었다. 그때의 프랭클린은 사실상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그릇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충고를 전적으로 수용했고, 자신을 더 낫게 만들고자 애썼다. 독단적인 행동을 자제하고, 말할 때에는 보다 부드러운 표현을 골랐으며, 늘 겸손한 자세로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나중에 그가 회상하길, 자신이 달변가가 아니면서도 사람들의 지지를 얻은 이유가 이런 자세에 있다고 했다.

군수품을 생산하는 한 공장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일반 가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첫 제품을 출시하고 난 후, 책상 하나에 페인트칠이 한 번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원래 책상에는 페인트칠을 두 번씩 해야 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따지면 이 책상은 불량품이었다. 그런데 책상은 이미 팔려나간 후였다. 사장은 고민 끝에 그 책상을 구매한 소비자를 찾는다며 TV 광고까지 했지만 보름이 넘도록 책상을 사간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여러 백화점에서 이 회사의 제품을 판매하겠다는 주문이 밀려든 것이었다. 불량품이 발생했지만 그것에 대한 바람직한 대처가 오히려 전화위복의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다.

오래 전에 영국 리버플에 한 레코드가게가 있었다. 가게 주인은 자신의 가게에는 구할 수 없는 레코드가 없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모든 레코드가 다 있다'는 문구를 내걸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소녀가 찾아와 레코드를 찾았는데, 그건 가게에 없는 것이었다. 주인은 당황했다. 자신이 모르는 음반을 조그만 소녀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서독 함부르크에서 녹음했다는 그 레코드판은 어떤 그룹의 음반이었다. 가게 주인은 문득 그 그룹에 대해 호기심이 일어, 조그만 라이브 하우스로 그 그룹을 보러 갔다. 그들의 연주를 접한 가게 주인은 결국 그 그룹의 매니저가 되기로 결심했다. 자신을 부끄럽게 만든 이 그룹은 바로 비틀즈였고, 그 가게 주인은 무명의 비틀즈를 세상에 알린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다. 그를 당황하게 만든 일이 그와 비틀즈에게는 엄청나게 좋은 일이 된 셈이었다.

때로는 실수가 큰 성공을 불러들이기도 한다. 발명가들에게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 그러니 실수나 실패는 그 자체로서 가치를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사건의 진정한 가치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발현되며, 때로는 사후에 드러나기도 한다.

오늘날 일본식 청주인 사케를 제조하는 기업인으로 유명한 고노이케는 창업 초기만 해도 오사카와 도쿄를 오가는 소상인에 불과했다. 당시 양조장에 들러 직원들의 근무 상황을 시찰하던 고노이케는 직원 한 명이 몰래 미주를 마시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런데 그 직원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 빚은 미주가 잘 담가졌는지 맛보던 참이었다고 둘러대는 것이었다. 결국 그 직원은 해고되었다. 하지만 직원은 곱게 떠나지 않았는데, 미주 통에 재를 한 줌 뿌리고 나갔던 것이다. 재를 뿌리면 원래 탁한 미주가 더 혼탁해져서 상품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저지른 일이었다. 그런데 이튿날 고노이케가 그 술을 살펴보았을 때 이상하게도 맑고 투명한 술이 된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 일이 해고된 직원 때문임을 알았지만, 곧 맑은 술에 호기심이 생겼다. 그는 이 술을 바탕으로 청주 제조법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탁주 정화법을 개발해냈다. 그렇게 하여 사케라는 술이 탄생하게 되었다. 못된 직원의 복수가 오히려 복이 되었던 것이다.

네덜란드에 사는 어떤 청년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읍내로 나와 정부에서 나눠주는 일자리를 얻었다. 그 후 60년이 넘게 문지기로 일했고, 한 번도 그 지역을 떠나지 않았다. 조그만 동네에서 변변찮은 일을 하면서 평생을 보낸 것이었다. 그 점에 대해 스스로 자격지심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남는 시간에 취미 삼아 렌즈를 연마하는 일을 했다. 그건 아주 섬세한 작업이었는데, 평생 동안 그 작업을 하다 보니 손재주가 장인을 뛰어넘게 되었다. 나아가 그렇게 섬세하게 만든 렌즈를 통해 미생물의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중학교 학력이 전부였던 그가 파리 과학원 회원이 될 수 있었다. 그는 그저 조그만 마을에 사는 문지기에 불과했지만, 나중에는 그를 만나기 위해 그 마을까지 영국 여왕이 찾아오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가 바로 네덜란드의 과학자 레이우엔훅이다. 그가 과연 잘 사는 집에 태어나 대도시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그 조그만 렌즈를 연마하는 일에 평생 매달릴 수 있었을까. 그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살았다면, 과연 여왕이 그를 만나러 그곳까지 오게 할 수 있었을까.

'고리키 대학'이라는 말이 있다. 러시아의 문호 고리키는 젊은 시절 불운한 방랑생활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귀중한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고 한다. 그에게 넓은 러시아 대륙은 교실이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교수였다. 이처럼 그에게 방랑시절은 불운한 시절이 아니었던 것이다.

누구나 이따금씩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겪게 마련이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 일도 나름의 '긍정'을 품고 있다. 다만 그렇게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긍정심리학으로 유명한 마틴 셀리그만은 말했다.

"사람들의 대응방식은 생각과 감정,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된다. 좋건 나쁘건 상관없이 감정의 95%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에픽테토스는 그것을 이렇게 말했다.

"만약 헤라클레스가 용감히 처치했던 사자, 히드라, 수사슴, 멧돼지, 비열하고 흉포한 인간이 하나도 없었다면 과연 헤라클레스는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그는 무엇을 해야 했을까? 그냥 이불을 둘러쓰고 잠을 청하는 것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그가 호사스럽고 쉬운 삶을 살았다면 헤라클레스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살았다면 자신을 어디에 활용할 수 있었겠는가? 만약 환경과 사건이 그를 자극하지 않았다면 그의 근육질 팔과 튼튼한 몸은 어디에 쓰고 그의 인내와 고귀한 성품은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때로는 좋은 일처럼 보이는 일도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유명한 지휘자 카라얀은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의 폭정에 시달린 단원들은 신에게 기도하길, 카라얀을 어서 당신의 품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의 독재는 무려 35년을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단원의 바람대로 카라얀이 사임하고 아바도라는 지휘자가 부임했다. 온화한 성품의 아바도는 단원들의 의견을 수렴했고 그들의 가족들에게도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만 좋게 보였을 뿐이었다. 단원들은 새 지휘자를 맞으면서야 비로소 카라얀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독재자가 사실은 단원들의 실력을 엄청나게 향상시켰다는 것을 말이다. 새 지휘자는 친절하고 온화했지만 지휘자로서의 재능은 시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단원들은 "무능한 아바도를 타도하자! 그는 베를린 필의 비전도 단원들에게 물어볼 정도로 안목이 없는 사람이다."라며 들고 일어났다. 몇 년 뒤 아바도는 그곳을 떠나야 했다.

이와 같은 일이 늘 벌어진다. 안 좋은 일은 당장 힘들다고 안 좋게 보이고, 좋은 일은 당장의 편안함 때문에 꼭 껴안고 싶어진다. 하지만 어떤 일의 진가는 지금 당장 알아볼 수 없다. 당신이 길을 잃게 되면 그게 꼭 나쁜 일은 아니다. 길을 더 많이 알게 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대학 입학시험에 떨어지면 그게 문제가 될까. 이 세상의 자수성가한 백만장자 중 85퍼센트에게는 대학 학위가 없는데도? 당신이 자수성가를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다면, 그때는 대학에 떨어진 게 분명히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소학>에 이르기를 사람에게는 세 가지 불행이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높은 벼슬에 오름이 첫째 불행이요, 부형의 세력을 업고 고관이 됨이 둘째 불행이며, 뛰어난 재주가 있고 문장에 능함이 셋째 불행이라는 것이다. 왜 불행인가? 남의 도움이나 타고난 재주에 의하여 쉽게 얻은 성공은 그만큼 잃기도 쉽다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반대로 어렵게 얻은 성공은 그만큼 단단하기 때문에 세상의 압력을 받아도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의 격언에 따르면, 몰락은 우리 자신을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릴 에너지를 얻는 계기라고 한다. 하지만 더 높은 단계는 우리의 방심을 유발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된다. 어쩌면 삶이란 행운과 불운이 연속으로 감싸고 있는 양파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 점을 감안하고 이런 일도 저런 일도 담담히 넘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평탄한 삶을 이끌어 나가는 지혜일 것이다.

글_ 조원기(wk@happy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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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나는 세미나 사업을 시작했다. 세미나는 주말 과정으로 마음의 평온과 목표 세우기, 그리고 성공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프랜차이즈 사업이었고, 나는 내가 사는 도시에서의 프랜차이즈 권리를 얻었다. 내 친구 폴도 같은 시기에 시드니에서 같은 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첫 번재 세미나를 1985년 5월 정확히 같은 주에 시작했다.

내 천 번째 세미나에는 14명의 수강생이 있었고, 폴도 똑같이 14명의 수강생이 있었다. 14명이면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시작은 좋은 것 같았다. 나는 행복했다. 한 달 후 우리 둘 다 두번재 세미나를 열었다. 나에게는 12명의 수강생이 왔고 폴에게는 35명이 왔다. 그 다음 달에는 나에게 11명이 왔고 폴에게는 60명이 왔다. 그 다음 달에는 나에게 10명, 폴에게는 100명이 왔다.

망해가고 있는데 성공에 대한 세미나를 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나는 모든 것이 불만스러웠다. 우리 도시를 원망하고 내 광고 프로그램을 원망했다. 날씨도 원망하고, 내 수업을 듣지 않는 멍청이들을 원망하고, 내 수업을 듣는 멍청이들을 원망했다. 그리고 나 자신도 원망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내게 열 살 때 해주었던 조언을 다시 들려주셨다.
"네가 가진 것에 집중하렴. 너와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렴."

좌절에 빠져 비난할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자, 난 내가 폴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을 그만두었다. 내가 폴의 사업을 하고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도 그만두었다. 나는 내가 가진 것에 행복해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내 수업을 듣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내 다음 학기에는 30명이 등록했다. 그 다음 학기에는 55명이 등록했다.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통스러운 여섯 달은 고마움을 깨우치게 해준 중요한 수업이었다.


참고도서 : 그럼에도, 행복하라(앤드류 매튜스, 좋은책만들기)
Posted by 나두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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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상대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얼마 전, 한 컨설팅 업체의 사장에게 나를 연례 회의 기조연설자로 채용해 줄 것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사장이 이렇게 물어 왔다.

 "저는 다른 여러 연사들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왜 제가 그 사람들을 두고 당신을 고용해야 합니까?"

 나는 방어적인 태도로 나의 장점을 늘어놓는 대신 그 회사의 사장이 참석할 회의에 대한 개방형 질문을 몇 개 던졌다.

 "회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기조 연설자로 제가 그 회의에 무엇을 기여하기를 바라십니까?"

"그동안 고용했던 연사들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고, 어떤 점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까?"

질문할 때마다 대답이 15분에서 20분 정도씩 이어졌다. 사장은 이 질문에 기꺼이 답하고 싶어 했다. 사장은 나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게 된 점을 편안하게 느끼는 듯 했다. 사장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과 걱정거리에 대해 얘기하는데 몰입한 나머지 나를 아직 고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고 말았다.

 한 시간가량 얘기를 나눈 후, 컨설팅 업체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에게 수표를 내드려야 할 거 같군요. 얼마를 원하십니까?"

 나는 그 사장에게 고용해 달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다만 개방형 질문을 한 덕에 사장은 편안함을 느꼈고 편안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고용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사장의 질문을 받고서 가격을 얘기했더니 사장은 즉석에서 수표를 써 주었다.

  

참고도서: 협상의 달인(에드 브로도, 민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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