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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나두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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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칭찬을 들으면 그것만 먹어도 두 달은 살 수 있다." 마크 트웨인이 한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서 받는 칭찬이나 인정에 기대고 있다면, 정작 우리 자신이 가야할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느라, 정작 자신이 원하지 않은 일에 매달리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남들에게서 받는 인정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시기도 분명 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훌훌 털고 일어나 홀로 나아가야 한다.


존 맥스웰은 성공학 전도사가 되기 전에 목사로 활동했다. 20대 초반에 목사직을 맡기 시작한 그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고 최선을 다했고, 그 노력에 대해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다. 하지만 주위의 칭찬은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정을 받기 위한 노력은 끝없이 에너지만 쏟아 붓다가 결국 그를 탈진시키고 만다. 하지만 그것은 유익한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그때 나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한 가지 얻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 인정은 변덕스럽고 덧없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평생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가치 있는 일과, 남에게서 오는 칭찬을 맞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들 안'에 속해서는 나의 운명을 동시에 따를 수 없다."

1995년에 그는 자신에게 '잘 나가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무한정 부여하던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미국에서 교파가 가장 크고 가장 유명한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스카이라인 웨슬리안 교회의 수석 목사직을 내놓았던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목사로서 수많은 교인들의 관심을 즐기며 여생을 편안히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만의 길을 걷기 위해 그곳을 떠났다. 그 후 그는 리더십과 자기계발에 대한 강연을 이어나갔다. 그제야 비로소 그는 남들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독립적인 존재로 홀로 설 수 있게 되었다.

회사에서 상관이나 동료에게서 칭찬을 듣거나 인정을 받으면 뿌듯한 느낌을 받는다. 부모의 인정을 받은 아이들은 뭔가를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곳저곳에서 어떤 식으로든 받는 칭찬은 무시할 수 없는 기쁨이다. 스승이나 멘토에게서 받는 인정은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충만한 보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은 곧 남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칭찬을 해주는 상대의 삶을 당신이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한 수도자가 있었다. 그는 정체 모를 병에 걸려 몇 해 동안을 앓아누웠다. 수도원은 그를 살리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애썼다. 하지만 병세는 여전했다. 조금 나은 듯 하다가도 이내 병은 도지곤 했다. 온갖 치료 방법을 동원했지만, 그 수도자를 구할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수도원장이 찾아와 뜻밖의 말을 건넸다.

"나는 이 수도원의 모든 수도자들과 우리를 후원하는 모든 신도들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왔소. 당신을 사랑하고 염려하는 그 모두를 대표해, 나는 당신에게 죽음을 허락하기 위해 왔소. 이제 당신은 회복되지 않아도 좋소."

그 말에 수도자는 흐느껴 울었다. 그동안 그는 병에서 회복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건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이라기보다는, 그의 회복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수도원 동료들과 원장 그리고 신도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병에서 낫지 않는 것은 그에게 엄청난 죄책감이자 부담이었던 것이다. 그때 수도원장이 한 말은 그런 기대에 더 이상 부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언과 같았다. 그 수도자의 눈물은 자유를 얻은, 알 수 없는 안도감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동안에는 그 어떤 치료법도 듣지 않았는데, 병이 서서히 차도를 보인 것이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는 그들의 바람대로 행동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누군가의 기대 안에 자기 자신을 가둔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수도원장의 말은 그 수도자의 마음을 자유롭게 했고, 자유로운 마음은 몸에게도 자유를 허락했으며, 이는 회복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당신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고 있고, 그 사실을 당신이 분명히 알고 있다면, 굳이 칭찬을 구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남의 칭찬을 얻을 일을 찾아 하고 있다면, 그때 당신은 누구인가. 자신의 존재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당신에게 칭찬을 베푸는 사람이 사라질 때 당신마저 함께 사라지는 게 아닌가. 냉정하게 말해서 칭찬은 그것을 말한 사람의 것이지, 그것을 받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명성과 인기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는 사람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그걸 착각하고, 자기가 받았으니 자신의 것이라고 여기게 되면, 인기가 사라지면서 좌절하고 우울증에 시달리고 심지어 목숨을 저버리기까지 하게 된다.

만약 스스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이 당신을 높이 평가한다고 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남들의 평가는 하루아침에 뒤집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자존감도 한 순간에 뒤집어질 수 있는,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신세가 된다. 하지만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면, 그것은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존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자존감을 지닌 사람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평가에 흔들리지 않는다. 어디서 무슨 대단한 상을 준다고 해도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설사 노벨상을 준다고 해도 마음이 들뜨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퀴리 부인은 영국왕립아카데미에서 받은 금메달을 어린 딸이 가지고 노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이를 지적하는 친구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난 아이에게 명예란 그저 장난감과 같은 것임을 일깨워주고 싶어. 명예는 잠깐 가지고 놀 수는 있지만 영원히 소유할 수는 없는 거잖아. 반짝 명예에 우쭐해하다 보면 아무것도 해낼 수 없어."

남들이 인정해주기를 바라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에 충실한 사람은 비로소 죽지 않는 순수한 열정을 발견한다. 영화배우 러셀 크로는 말했다. "나는 대본을 보고 온몸이 떨리지 않으면 영화를 찍지 않는다. 나는 내가 열정을 가진 영화만 만든다." 화성에 로봇을 보냈던 미항공우주국의 천재 과학자인 데이브 래버리는 이렇게 말했다. "열정이란 말로도 내가 느낀 것을 충분히 묘사하는 데 부족하다. 나는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나를 깨우고, 나를 흥분시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 때문에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하러 나가며, 밤에는 잠자리에 들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켄터키 주 루이빌에 사는 순찰대원 조 마틴은 주차장 미터기에서 동전을 수거하는 일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소년들에게 권투를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열두 살짜리 흑인 소년이 울면서 체육관에 들어왔다. 조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새 자전거를 도둑맞았다고 하면서 훔쳐간 사람을 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날부터 소년은 체육관에 와서 혼신의 힘을 다해 운동을 했다. 조는 소년의 재능을 알아보고는 "넌 최고야!"라고 얘기했다. 조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던 소년은 권투 선수가 되기 위해 온 마음을 쏟았다. 나중에 그들은 올림픽 경기에서 최고의 영광을 얻었다. 정말 '최고'가 된 것이었다. 이 소년은 사람들에게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무하마드 알리는 애초에 코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또 자신의 복수를 위해 권투를 배웠다. 하지만 어느덧 권투는 자기 자신만의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는 단순히 복수를 하거나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싸우는 정도를 넘어섰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 링 위에 섰던 것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누군가의 지도를 받게 되고, 지도해주는 사람의 기대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래서는 안 된다. 어느 순간에는 그런 기대감을 딛고 일어나 자기 자신만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부모의 뜻대로 진로를 결정하거나 배우자를 골랐을 때, 반드시 만족스러운 결과가 기다린다는 보장이 없다. 퍽이나 운이 좋아야만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가 벌어진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부모가 당신에게 자신들의 기대를 전혀 심지 않은 상황에서, 당신이 저절로 알아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세대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관심사가 다른데 말이다.

사회의 가치 기준에 따르는 것은 안전한 길로 보인다. 그것은 물질적인 성공과 정신적인 평안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거기에는 생명이 없다. 당신 자신만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벅찬 생동감을 느낄 수 없다. 겉으로 당신은 생활에 필요한 경제력을 갖추고 사회적인 지위와 체면을 유지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 안에 충만한 삶의 감정이 함께한다는 보장은 없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껍데기의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남들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모르고 산다면 그나마 괜찮지만, 어느 날 불현듯 '삶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이 단 한 순간이라도 피어난다면, 당신은 더 이상 그 상태의 삶에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오랜 노력의 결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유명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었다. 미국 인명록에 2년 연속 등록되는 영광도 누렸고, 학술계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도 즐겁지가 않아요. 난 이 일이 끔찍하게 싫거든요. 그저 편안히 다리를 꼬고 앉아 아무 일도 안 하고 싶지만, 감히 엄두를 낼 수가 없어요. 사실 예전엔 그저 고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말이에요."

당신이 누구인지 다른 사람에게 묻지 말라. 그것은 당신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평가가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알고 보면 모든 평가가 다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간혹 아주 드물게 당신에 대해 당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의 모습을 알아냈다 해도 그것은 당신의 앎이 아니다. 그것은 여전의 남의 지식이며 죽은 지식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을 깊이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뭔가를 배울 때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평가를 받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 과정을 통해 당신은 더욱 숙련된 실력을 갖게 된다. 하지만 당신의 존재에 대해, 당신의 기쁨에 대해, 당시의 가치에 대해 평가를 구하고 그에 따른 인정받기를 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그 평가에 종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자유롭게 태어나서 종속되기를 선택한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아간다. 그 창살은 남들의 '인정과 평가'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기 자신이 그 창살을 하나하나 만들어 스스로 자신을 가두게 된다. 물론 삶의 생존 방편을 얻기 위해서는 남들의 인정을 받는 게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돈벌이의 문제이고, 지금 말하는 것은 삶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다. 돈이 생존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삶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당신이 오직 세상의 하나뿐인 당신이 되기로 하고 굳건히 그 길을 걸어갔을 때, 당신에 대한 사람들의 인정이 저절로 따라오기 마련이며, 거기에 생존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도 동시에 존재한다.

 

루이스 캐롤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내가 어떤 단어를 말할 때, 그 단어는 내가 선택한 의미가 있게 되는 거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러자 앨리스가 말했다.

"그렇게 되면 단어 하나에 아주 여러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 문제가 되겠군요."

"그렇게 되면 누가 주인이 되느냐, 그게 문제가 되는 거지. 그게 다야."

남들이 당신에게 사용하는 칭찬의 단어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 설사 그게 비난의 단어라 해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하는 말은 물론 당신의 듣는 말에 있어서도 당신이 주인공이 되도록 하라. 당신이 주인공이 아닌 말은 그냥 흘려보내라.

또한 남들이 인정하는 일보다, 당신이 인정할 수 있는 일을 하라. 남들의 칭찬에 기대지 말고 당신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칭찬할 수 있도록 행동하라. 남들이 당신에 대한 칭찬을 거두는 날은 언제고 찾아올 수 있지만, 스스로 자신에게 건네는 칭찬은 다함이 없을 것이다. 당신 자신이 곧 '인정'이자 '칭찬'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에게 그 무엇보다 값진 선물인 것이다.

물론 칭찬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아낌없이 칭찬을 베풀라. 당신에게 주어지는 칭찬은 기쁘게 받아들여라. 하지만 쓸데없이 칭찬을 남발하지 말라. 그들만의 삶을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신 역시 칭찬에 기대지 말라. 칭찬은 길을 갈 때 주변에 피어 있는 꽃과 같다. 꽃이 아름답다고 그 옆에 머물게 되면 목적지로 향할 수 없다. 그 꽃을 꺾어 간직하고자 해도 이내 시들고 말 것이다. 그저 흔들림 없이 멈춤 없이 당신 자신의 길을 가라. 거기에야말로 칭찬의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만족감이 존재한다.

헨리 데이빗 소로는 이렇게 말했다. '동료와 발을 맞춰 행진하지 않는 것은 다른 북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박자건 얼마나 멀리서 들려오건 자신이 들은 음악에 발을 맞춰라.' 모두가 남들의 칭찬에 발을 맞추더라도 당신은 당신이 들은 북소리에 발을 맞추어 당신만의 길을 가라. 그곳에 진짜 삶이 있다.

글_ 조원기(wk@happy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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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두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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