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나두미키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365)
Camping (9)
Apple (4)
Marketing (1)
Mailing Article (289)
Music & Book (3)
Travel + Food (2)
BoxOffice 순위 (17)
Issue (21)
Epitaph (5)
지후군 이야기 (7)
Total
Today
Yesterday

 

우리는 행복을 약속하는 수단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그 수단을 얻게 해줄 또 다른 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애쓴다. 행복에 필요한 돈을 얻기 위해 일자리를 구하고 일자리를 얻기 위해 자격증을 따고 자격증을 얻기 위해 학교에 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돈은 그 자체가 행복이 되지 못하고, 행복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다른 수단을 사들여야 한다. 
이렇듯 우리는 수단을 확보하느라 삶의 대부분을 보낸다. 그리고 수단에서 얻는 행복한 느낌은 
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빨리 사라진다.


 

 

 

건축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사라 수산카는 삶에 대해 이런 글을 썼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기를 일하는 데 쓴다. 그것도 대개는 남을 위해, 생필품을 사는 데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일한다. 그런 것들이 대체로 해결되면 맛있는 음식, 고화질 텔레비전, 고급 브랜드 옷, 편리한 자가용 등 좀 더 편하게 사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산다. 그리고 온갖 물건을 놓을 수 있도록 큰 집을 선호한다. 돈은 은퇴할 시기를 고려해서 따로 안전히 모아둔다. 이상적인 은퇴 시기는 65세이며, 그때나 되어야 일을 그만두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 힘이 다 빠지면 요양원이나 나이 든 자녀의 집에 들어가 텔레비전 시청 등 별로 힘들지 않은 오락을 하다가 저세상으로 간다."

 

이게 사람들 대부분에게 주어진 삶의 형태다. 더러는 조금 낫게 혹은 조금 낮은 수준으로 살게 되는데, 그래도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다름 아닌 '행복'이다. 우리의 모든 활동은 행복이라는 결과에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다. 우리가 행복을 얻기 위해 하는 모든 행위는 그 자체가 행복이 아니라, 행복을 얻는 수단이라는 점이다. 돈은 많은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물론 강력한 수단이긴 하지만, 돈을 집에 쌓아두었다고 해서 행복이 저절로 오지는 않는다. 그것으로 또 다른 수단을 구하는 데 써야 한다.

 

행복에 이르는 수단을 얻기 위해 우리는 한평생을 보낸다. 이처럼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이유는 "어느 정도가 충분한지" 우리가 좀처럼 가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의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충분할 거라고 생각한 정도를 얻고 보았더니 여전히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우리가 확보한 수단만큼 행복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재화를 더 많이 가질수록 그만큼 더 행복해진다면, 삶의 문제는 매우 단순해졌을 것이다. 우리는 마냥 더 많이 갖기 위해 달려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철학이나 종교는 아예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게티 오일의 창립자이자 미국 최초의 억만장자인 폴 게티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합니다. 충분히 가졌다는 생각이 드는 때는 언제입니까?"

 

폴 게티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까지는 그런 생각을 해본 일이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50년간 개인소득이 2.5배 이상 늘었지만, 행복감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포브스 지가 발표한 미국 최고의 부자들 중 40퍼센트는 평균적인 미국인에 비해 덜 행복하다고 한다. 또한 로또 당첨자들의 행복도는 1년만 지나면 로또에 당첨되기 전의 행복 수준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시간대학교 로널드 잉글하트 교수는 43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행복이 경제 발전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다만 1인당 GNP가 약 1만 달러에 도달할 때까지만 그렇고, 그 이후로는 돈이 많아져도 그 만큼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강렬하게 원한다. 돈으로 대표되는 행복의 수단을 말이다.

 

어떤 사람은 행복해지기에는 그 어떤 수단도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공식으로 표현했다. 저명한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이다. 그 공식은 이렇다.

 

행복 = 소유 / 욕망

 

이 공식에 따르면 많이 가질수록 또는 적게 바랄수록 그만큼 더 행복해진다. 반대로, 가진 것이 적거나 혹은 더 많이 원할수록 행복은 줄어든다. 찰스 디킨스는 그것을 이렇게 말했다. "만약 연 수입이 20파운드인데 지출이 19파운드 6센트라면 그 사람은 행복하다. 하지만 20파운드를 버는 사람이 20파운드 6센트를 쓰면 그때부터 불행은 시작된다." 이 두 사람이 쓰는 돈의 차이는 단 1파운드밖에 되지 않지만, 행복의 공식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갈리는 것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말했다. 누군가를 풍요롭게 만들고 싶다면, 재산을 늘려주지 말고 욕구를 줄여주라고 말이다. 재산의 증식 여부는 바깥의 활동이고, 욕구의 크고 작음은 안의 활동이다. 이 안과 밖이 그 균형을 잃게 되면 행복도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충분함의 반대는 부족함이 아니라 너무 많이 갖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왜 너무 많이 가지려 하는가. 그만큼 욕망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코 충분해지지 않는 것이다. 욕망이 날로 자라나고 있다면, 행복이 충분해질 가능성은 점점 멀어진다.

 

위에서 폴 게티에게 질문한 기자는 이렇게 물었어야 했다.

 

"당신은 당신이 가진 재산만큼 행복합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욕망을 억제하면서 살아야 할까. 그렇게 살 수도 없을 것이다. 억제된 욕망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간절하고 생생하게 살아남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욕망의 억제가 아니라, 행복의 진실을 아는 것이다. 즉 행복은 어떤 수단도 통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고대 페르시아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어느 나라의 왕이 스스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자 점성가들이 말하길, 완벽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의 셔츠를 가져다 입으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왕은 사람들을 시켜 온 나라의 부유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낱낱이 찾아보게 했다. 하지만 행복한 사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한 명을 발견했는데, 그는 일터에서 돌아오는 한 일꾼이었다. 그 일꾼은 정말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왕은 즉시 그 일꾼의 셔츠를 가져오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그 지시는 이행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일꾼은 셔츠를 입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은 자신이 가진 것에 충분히 만족하지 못했지만, 보잘 것 없는 일꾼은 자신의 삶에 전적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그 일꾼은 자신이 왕국을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전혀 없었지만, 왕은 왕국 하나를 갖고 있는 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했다. 그래서 왕이면서도 보잘 것 없는 일꾼의 셔츠를 탐했던 것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금광을 찾아 사막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내리쬐는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도 전혀 없었고,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은 모래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만은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보아하니 그는 가진 것도 별로 없는 듯 보였다. 누군가 물었다.

 

"당신은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소?"

 

그러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짊어진 짐이 제일 적으니까요."

 

어쩌면 행복이란 그것을 사려고 하지 않을 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살 수 있다고 생각되는 수단들을 한껏 끌어 모아 창고 속에 담아놓고 있지 않을 때,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그 수단들이 모인 창고는 금방 부패하여 한 조각의 행복도 사지 못하기 십상이며, 어쩌면 지금 가진 행복을 가로막는 짐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수단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곧잘 분란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을 사기 위해 돈을 벌어들이고, 그 돈으로 행복을 얻기 위해 각종 물건과 서비스를 구입한다. 거기에는 만족감이 있다. 다만 그 만족감이 지속하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다. 즉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힘겹게 얻은 재화로 우리는 단기적인 즐거움을 주는 수단에 투자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에 '시간'이 더해진 것, 그것을 우리는 '삶'이라고 부른다.

 

단기적인 만족은 그야말로 단기적이다. 게다가 그것을 한껏 취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강도의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 행복의 수단은 그것을 취할 때마다 만족도가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강하거나 또 다른 만족의 수단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20세기 초반에 비해 크게 향상된 삶의 질을 누리고 있지만, 과연 그 격차만큼 행복을 느끼는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그것은 100년 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삶의 질은 나아질 테지만, 여전히 행복 수단을 얻느라 분투하고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 삶은 계속 흘러가고 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라는 책으로 유명한 교육학 교수 레오 버스카글리아가 심장병으로 숨을 거둘 당시 마지막 순간에 이런 글을 남겼다. &#985170;불행 속에서 흘려보낸 모든 순간은 바로 잃어버린 행복의 순간이다.&#985171; 행복의 수단을 얻기 위해 흘려보낸 시간이야말로 곧 행복을 만끽했어야 할 시간이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고 여겨지는 어떤 수단이 소중해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향긋하고 따뜻한 커피가 수도꼭지에서 틀기만 하면 나오는 것이라면, 더 이상 우리에게 로맨틱한 분위기를 안겨주는 따뜻한 한 잔의 감성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충분히 가질 수 없다는 점이 그것이 소중해지는 역설적인 이유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그것을 충분히 가질 여유가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예전처럼 가치 있게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의 수단은, 적을 때는 아쉽고 많을 때는 하찮게 보인다. 만약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에도 충분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면, 굳이 얻기 힘든 것에 목매는 성향에서 벗어난다면, 삶은 그 자체로 큰 변화를 겪을 것이다.

 

상쾌한 아침 공기, 따사로운 햇살, 아이의 웃음, 한 잔의 차에 삶의 행복이 묻어날 것이다. 값비싼 명품이나 고급 레스토랑이나 해외여행을 동경하며 그것을 얻지 못함으로 인해 안달하지 않을 것이다. 그 동안에도 삶은 지나가고 있는데, 안달하는 대신 당신을 둘러싼 것들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면, 삶은 저절로 빛나게 마련이다.

 

아무리 애써 무시하려고 해도, 우리는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즉 얼마나 많이 갖느냐 하는 것은 궁극의 행복에서는 의미 있는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야말로 의미 있는 것을 시사한다. 즉 모든 사람이 지금 자신이 처한 그 상태로 행복을 추구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행복한 사나이의 셔츠를 구할 수 없었던 왕은, 그 사실에 좌절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자신이 이미 그 셔츠를 입고 태어났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 셔츠를 얻기 위해 그 누구도 돈을 지불하거나 수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떤 여성이 절에 전화를 걸어 법문에 참가하고 싶다며, 얼마를 내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전화를 받은 수행승이 '무료'라고 대답했다. 잠시 후 그녀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 같은데, 법문을 들으려면 얼마를 내야 하느냐고요."

 

"돈은 전혀 내실 필요가 없습니다. 무료입니다."

 

"내 말이 안 들려요? 몇 달러 몇 센트냐고요. 얼마를 갖고 가야 입장이 가능하느냐고요!"

 

수행승은 자신의 대답을 잘 이해시키기 위해 애썼다.

 

"정말이지 돈은 한 푼도 가져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 여성은 다시 한 번 할 말을 잃었다. 잠시 후 그녀는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그 일을 해서 얻는 게 무엇인가요?"

 

그러자 수행승이 이렇게 대답했다.

 

"행복입니다, 부인. 행복이지요."

 

행복을 구하는 데는 단 한 푼도 지불할 필요가 없다. 행복의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기꾼이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행복의 수단을 찾느라 안달하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괴테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가 작품에 필요한 모든 재료를 가졌듯이 우리 모두는 각자의 행복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가졌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글_ 조원기(wk@happyL.kr) 

Posted by 나두미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