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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나두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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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한 사람은 여행 중 갑작스런 사고로 낯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입원을 하게 되었다. 평생 수술을 하던 그가 환자복을 입고 환자 입장에서 며칠간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완전하게 다른 의사가 되었다. 한번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환자 입장이 되자 새롭게 세상을 보게 되었다.

교향악단의 클라리넷 연주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늘 연주만 하던 그는 관중석에 앉아 연주를 들어보면서 희한한 경험을 한다. 그 사건 이후 그는 완벽한 클라리넷 연주자가 되었다. 거듭났다.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변화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시각에서 자신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변화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만약 다른 사람 눈에 비친 내 모습을, 이런 행동을 계속했을 때 내게 어떤 일이 오는지, 내 딴에는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이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비칠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변화할 수 있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한다.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신에 대한 인식은 마치 옷의 첫 단추와 같아서 그것이 잘못되면 모든 것이 어긋나 버린다. 자신에 대한 인식이 잘못된 사람이 내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 사회와 세계에 대한 의견들은 줄줄이 잘못된 것일 수밖에 없다.

제자가 되기를 청하는 젊은이에게 현자가 퀴즈를 낸다. 이 퀴즈를 풀면 받아주겠단다.

“굴뚝을 빠져 나온 두 젊은이가 있다. 한 사람은 깨끗하고 한 사람은 더럽다. 둘 중 누가 먼저 자신의 얼굴을 씻을 것 같은가?”

젊은이는 더러운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틀렸다. 더러운 사람은 친구가 깨끗한 것을 보고 자신도 깨끗한 것으로 착각해 천천히 씻는다는 것이다. 젊은이는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부탁한다. 똑같은 질문을 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더러운 사람이라고 답했다. 현자는 틀렸다고 얘기한다. 깨끗한 사람이 얼굴을 씻으니까 자신도 씻는다. 깨끗한 사람이 씻으니 나도 당연히 씻어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하지만 현자는 거절한다. 그의 얘기이다. “나는 너를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겠다. 너는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 . 어떻게 같은 굴뚝에서 내려왔는데 한 사람은 깨끗하고 한 사람은 더럽겠는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지만 그 중 하나는 그만큼 자기 모습을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가장 힘든 일은 주제 파악이다. 내가 생각하는 자기가 아닌 남의 눈에 비친 솔직한 자기모습을 파악하는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도 진정한 내 모습이 아닌 뒤집어진 모습이다. 실제 녹음기에 메시지를 저장했다 들어보면 “이거 내 목소리 맞아?” 하는 생각이 든다. 비디오에 찍힌 모습을 다시 보게 되어도 친근감보다는 나와는 다른 이질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물리적인 모습이 이러하니 내적인 내 모습,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평소 남들 앞에서 많은 얘기를 하고, 그럴듯한 글을 쓰고, 자문을 하는 직업을 가진 나는 남들 눈에 비친 내 모습에 더 큰 두려움을 갖는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만 쉴 새 없이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신경이 쓰인다. 도대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겉으로 표현은 안 하지만 ‘너나 잘 하세요’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 자신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가,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나 자신을 개선시켜야 하는 것일까?

주제파악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자신에게 싫은 얘기라도 솔직한 얘기를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야당이 존재하고, 좌파가 존재하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딸이 그런 역할을 한다. 집에서 말귀를 못 알아듣고 드라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딸은 강력한 펀치를 날린다. “아빠 저런 드라마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코칭하고 자문을 하는거야? 참, 미스테리야”
Posted by 나두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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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모 회사 사장으로 스카우트되어 갔다. 계열사를 10개 이상 가진 중견기업이다. 매출이 1조원을 넘는다. 오랜만에 만나 얘기를 나누다 그 오너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왕소금이라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작년 초에 일어난 일입니다. 계열사 사장들을 굳이 연초에 집으로 초대를 하는 겁니다. 다들 바쁜 연초에 왜 사람을 부르는지. 최근 수십억을 들여 지은 집 자랑을 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아침 식사를 하고 와인을 마시고 집에 왔습니다. 근데 며칠 후 비서실장을 통해 와인 값을 청구하는 겁니다. 워낙 비싼 와인이라나요. 세상에 자기가 초대하고 와인 값을 받는 건 보다 처음입니다. 이런 경우를 보고 기가 막힌다는 말을 하나봅니다.
그러더니 올해는 사장단 부부를 초대하는 겁니다. 부인까지 가서 그런지 선물을 주더군요. 나중에 집에 와 풀어보니 플라스틱 반찬통 한 세트더군요. 작년 실적이 엄청 좋았습니다. 기십 억 이익을 냈기 때문에 은근히 금일봉을 기대했습니다. 예전 회사에서는 회장이 연초에 금일봉을 주는 것이 관례였거든요. 근데 사장들에게 반찬통이 왠 말입니까. 집사람이 분노를 하는 거예요. 경로잔치 간 것도 아니고 계열사 사장을 불러 기껏 반찬통을 주는 게 뭡니까? 집사람이 당장 때려치우라고 난리도 아닙니다.”

지인 중 한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펑펑 쓰지만 남을 위해서는 참으로 인색하다. 해외여행을 다니고, 기백만원짜리 명품 가방을 잘도 사지만 주변 사람을 위해서는 밥 한 번 사지 않는다. 그는 서울에 살다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가 서울에 살 때 참으로 밥을 많이 샀다. 반찬도 해다 나르고 여러 가지 수발을 많이 했다. 그가 감사하다면 생일 때 선물을 했다. 뜯어보니 발뒤꿈치에 바르는 크림이다. 나는 난생 처음 발뒤꿈치에도 크림을 바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갑자기 내 존재가 발뒤꿈치만도 못하단 느낌이 들었다. 지방으로 내려간 후 거의 연락은 없다. 하지만 가끔 서울 올 일만 생기면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난리를 친다. 가족을 끌고 올라와 지인 집을 전전한다. 참으로 곤혹스런 일이다. 다들 바쁜 생활에 온 가족을 끌고 와 며칠씩 진을 치니 얼마나 힘이 드는가? 그들이 지인 집에 머무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숙박비를 줄이자는 것이다. 그 래서 그 사람에게 “동가식서가숙”이란 별명을 부쳐줬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가 돈을 어디에 쓰는지 보면 알 수 있다. 자신만을 위해 쓰는지, 밥은 잘 사는지, 부조를 어떻게 하는지 등이 중요한 척도다. 인색한 사람을 보면 자꾸 분심이 생긴다. 나만 손해를 보는 것 같다. 그러다 박경리 선생의 사람의 됨됨이란 시를 읽고 그 분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고 위로를 받았다.

사람의 됨됨이
박경리

가난하다고 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
부자라고 모두가 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다르다

후함으로 하여 삶이 풍성해지고
인색함으로 하여 삶이 궁색해 보이기도 하는데
생명들은 어쨌거나 서로 나누며 소통하게 돼 있다
그렇게 아니하는 존재는 길가에 굴러 있는 한낱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인색함으로 하여
메마르고 보잘것없는 인생을 더러 보아 왔다
심성이 후하여 넉넉하고 생기에 찬 인생도 더러 보아 왔다

인색함은 검약이 아니다 후함은 낭비가 아니다
인색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
후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준열하게 검약한다

사람 됨됨이에 따라 사는 세상도 달라진다
후한 사람은 늘 성취감을 맛보지만
인색한 사람은 먹어도 늘 배가 고프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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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늘 내편에서 나를 굳건히 지지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를 가끔 생각해 본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누구에게 가장 먼저 연락을 할까, 어떠한 오해를 받더라도 나를 믿어줄 사람은 누구일까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홍석화 공장이다. 그는 이미 환갑을 지난 분이니 나보다 한참 연배지만 그를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따스해진다. 늘 만나면 반갑고, 무엇이든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정말 우리는 서로를 아끼고 위하는 그런 사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대우차 공장에서 근무할 때다. 연구소에서 근무하다 불량률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라는 미션을 받고 생산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 그를 만났다. 당시 태스크포스 팀장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현업도 바쁜 사람들이 내게 좋은 사람을 내어 줄 리 없었고 그는 당시 리더십이 부족하단 이유로 현업에서 빠져 있었다. 한 마디로 물을 먹은 상태였다. 하지만 생산부서에 처음 간 나로서는 이것저것 따질 입장이 못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그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공장 현황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그와 파트너가 되어 공장을 샅샅이 뒤지면서, 불량의 근본적 원인을 발견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는 현장 경험은 많았지만 부족한 학력 때문에 전문성은 떨어졌다. 하지만 나름대로 문제점을 보는 통찰력이 있었고 현장 직원들과 밀착해 있어 그를 통해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었다. 또 사람 보는 눈도 정확해 누가 일을 잘하고 누가 일을 잘 못하는지 나름 내게 귀뜸을 해 주었다. 무엇보다 부지런했고 긍정적이었다. 늘 잘 될거라고 나를 위로했고 어려운 주문도 척척 실행하였다. 궁합이 잘 맞았다.

특히 부지런함에 있어 그를 쫓아올 사람은 없었다. 예를 들어, 불량의 제 1 원인인 먼지를 줄이기 위해 헝겊 재질을 바꾸고 그 결과를 모니터링 하기로 했다면 그는 여지없이 새벽부터 나와 결과를 주시하고 내게 얘기를 해 주었다. 잘 되는 점은 이러이러한데 저런 점은 문제가 될 것 같네요... 대번에 피드백이 들어오니 나로서는 개선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장의 현황, 문제점, 개선진행상황, 직원들 사기 등등을 꿰뚫고 있었다. 늘 긍정적이고 행동이 빨랐다. 공장을 개선하자면 만들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지그, 작업대, 선반, 새로운 공구 등등... 공무부 등에 절차를 밟아 하다가는 몇 달씩 소요되었지만 그에게 부탁하면 이틀이면 만사 오케이였다. 워낙 발이 넓어 아는 사람이 많아 수단이 좋았던 것이다. 덕분에 공장의 불량률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고 나는 다른 부서로 전근되었다. 그렇지만 인연은 계속되었다.

얼마 후 회사에서 해외에 공장을 세우면서 문제가 발생하였다. 초기 단계에 많은 직원들이 그곳에서 일을 하는데 무엇보다도 먹고 자는 문제 때문에 사람들이 힘들어했던 것이다. 식사문제를 비롯해 초기에 나올 수 있는 수많은 문제를 순발력 있게 해결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홍 공장을 추천했고 그는 외국으로 날아가 멋지게 그 문제를 해결했다. 그 과정에서 힘든 일이 무척 많았겠지만 그는 일체 그런 표시를 하지 않았다. 회사 월급을 받는 사람이면 당연히 그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반문을 했다.

그러다 내가 회사를 그만 두게 되었을 때 가장 가슴 아파한 사람이 바로 홍 공장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때 명절이라고 과일을 사들고 와서 위로한 사람도 홍 공장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 때 그가 한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힘드시죠. 지금은 힘들지만 분명 이사님은 성공할 겁니다. 이사님 같은 분이 잘 안되면 대한민국에 잘 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큰 조직의 임원으로 있다 회사를 나온 후 방향을 못 잡고 어려워하고 있을 때 그의 말 한마디가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 때 속으로 다짐했다. “맞아, 나를 저렇게 믿고 따르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되지. 다시 한 번 잘 해보자.”

이후 작은 회사로 옮긴 후에 나는 그를 다시 모셔왔다. 나이가 들어 은퇴를 했지만 건강한 그가 노는 것은 사회적 낭비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일은 운전을 하고 물건을 실어나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젊은 직원들의 존경을 받았다. 게으름을 피우고 회사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는 직원들에게 쓴소리도 서슴치 않았다. 그러다 내가 그 회사를 나오면서 그도 같이 나왔다. 이후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가정 대소사는 꼭 챙겼다. 명절 때도 서로를 챙겼다.

그러던 어느 날 홍 공장님이 전화를 했다. 하지만 전화 목소리가 낯설었다. 순간 불길한 느낌이 엄습했다. 홍 공장님 아들이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그저께 갑자기 쓰러지셨는데 하루 만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하늘이 노래졌다. 눈물이 그냥 흘렀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다음 달쯤 예전 동료들과 밥 먹는 걸 주선하겠다고 하고선 그렇게 무정하게 갈 수가 있을까? 그 분이 간지 일 년이 지났지만 아직 그 분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이사님하면서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 그 사람을 기억하는 한 그 사람은 죽은 것이 아니란 말이 있다. 홍 공장님을 생각할 때 그 생각이 난다. 그 분은 돌아가셨지만 그 분은 아직 내 가슴에 살아 있다. 홍 공장님! 그곳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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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관계란 것?

얼마 전 옛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거의 20년 만에 온 전화다. 그 동안 그 친구는 완전 두문불출하고 지냈다. 동창회에도 일체 나오지 않았다. 친구들과도 아무 연락이 없었다. 하도 놀란 내가 “너 아직 살아있었구나, 무슨 일이냐”라고 묻자 쑥스러운 듯 언제언제 시간이 있느냐고 물었다. 시간 괜찮은데 무슨 일이냐 라고 묻자 그 친구는 “밥이나 먹으러 모 호텔로 나오라는 것이다.” 무슨 일인데 라고 재차 묻자 “딸 결혼식이다. 근데 내가 사회활동을 안 해서 올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너라도 와서 자리를 빛내주라”고 말을 한다. 이어 친했던 친구들 이름을 거명하며 연락처를 묻고 연락을 해 달라고 부탁한다. 알았다고 얘기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친했던 친구 한 명에게 그 얘기를 하자 시큰둥하게 대답을 한다. 그 친구에게도 문자로 옛날 친구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직접 청첩을 하라고 얘기를 했는데 답은 없었다.

어제가 바로 그 결혼식 날이었다. 돈은 많이 벌어서인지 무척 호사스런 결혼식이었다. 딸도 사위될 친구도 번듯하다. 하도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나도 그 친구도 쑥스럽다. 아내와 함께 자리에 앉자 옛 친구 둘이 나타났다. 한 친구는 나타나자 마자 불평을 쏟아낸다. “참 뻔뻔한 친구야. 30년 동안 연락이 없다 기껏 자식 결혼시킨다고 연락을 해. 참 기가 막히네. 내가 상 당했을 때도 문상조차 안 오던 친구야.” 그 친구가 전화를 했냐고 묻자 이렇게 답한다. “전화는 무슨 전화? 자네가 전화해서 온 것뿐이야. 그렇지 않았으면 오지 않았어.” 결혼식은 잘 진행되었다. 워낙 사회활동을 안 해서인지 내 또래의 아저씨는 별로 없다. 다 아줌마 내지는 젊은 사람들이다. 얼마 전 고교 동창회장을 지낸 친구 결혼식이 완전 동창회였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우리 셋이 그 날 그 친구의 유일한 친구였던 셈이다. 그래도 덕분에 친구 부부와 여러 얘기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가졌다.

집에 돌아오면서 그 친구와의 여러 일들이 생각났다. 고교시절 참 친했던 친구였다. 나는 공대를 가고 그 친구는 의대를 가면서 관계가 소원해졌다. 의사라는 직업에 엄청 큰 자부심을 갖고 공돌이 친구들과는 의도적으로 관계 맺기를 피한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결혼하고 유학 가고 하면서 관계가 끊어졌다 한 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 친구와 다시 연이 닿았다. 그 친구는 당시 서울근교에서 병원을 차렸는데 엄청 잘 됐다. 동창들 얘기에 의하면 하도 환자가 많아 한꺼번에 10명씩 세워놓고 진료를 한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아마 그 동네 돈은 그 친구가 다 빨아 들일거라는 시기질투의 소리까지 나왔다. 하지만 너무 인색했다. 별명이 1/n 이었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지만 밥을 먹으면 늘 머리수대로 나누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할 때도 자기가 하지 않고 늘 비서나 와이프를 통해 했다. 마치 나를 아랫사람 취급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친구들 사이에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20년 만에 딸 결혼식에서 만난 것이다. 결혼식이 끝난 후 우리 테이블에 그 친구가 왔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했다. “몇 년 전 자식 하나를 잃었다. 근데 너희들만 알고 다른 사람에게는 얘기하지 말아라.” 다들 충격을 받았다. 할 말을 잃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여러 얘기를 했다. 아내는 “험한 일을 당해서인지 얼굴은 좋질 않네요. 결혼식 이후 그 사람이 미안하니까 친구들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하지 않을까요?” 나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는 쪽에 한 표를 던졌다. 아마 부모님 돌아가시면 연락을 해서 그때 보고, 그 다음은 본인 혹은 내 장례식 때 한 사람은 살아서 또 한 사람은 죽어서 볼 것이라고 답을 했다.
사람관계는 화초 가꾸기에 비유한다. 아무리 좋았던 관계도 돌보지 않으면 황폐해진다. 별것 아닌 관계도 잘 가꾸고 보살피면 좋아진다. 그 친구 결혼식에 다녀오면서 든 생각이다. 동시에 많은 반성을 했다. 나는 무심한 성격이다. 친구들을 잘 챙기지 못한다. 딱 기본만 하는 스타일이다. 아마 그런 내 무심함 때문에 상처받은 이웃과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기회를 빌어 사과하고 싶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성숙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사회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적어도 자녀 혼사 때 친구로부터 “왠일이냐”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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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여행자

Mailing Article / 2011. 6. 16. 10:53


눈보라가 휘날리는 어느 날 밤 말을 탄 여행자가 여관에 도착했다. 여관 주인이 어디에서 왔는지 묻자 여행자는 자신이 온 방향을 가리켰다. 여관 주인이 깜짝 놀라 물었다.

"당신은 콘스탄스 호수 위를 가로질러 왔다고요. 알고 있나요?"

그 이야기를 들은 여행자는 말에서 떨어져 죽어버렸다. 콘스탄스 호수는 '죽음의 호수'라 불리는 곳으로 사람들은 그곳을 아주 두려워했다.

여행자는 눈보라로 인해 하얗게 변한 광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얼어붙은 호수를 가로질러 온 것이었다. 그러나 여관 주인의 말을 듣고 자신이 '죽음의 호수'를 건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너무 놀라 그 충격으로 죽고 말았다. 눈 덮인 땅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깨지기 쉬운 얼어붙은 호수였다는 것을 깨닫자 같은 장소가 전혀 다르게 다가왔던 것이다.

인생의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면 행복이 찾아온다. 그러나 불안함을 놓지 못하면 장애물도 함께 찾아온다. 인생은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축복을 찾기도 모자랄 만큼 짧다.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오직 당신의 마음이다.

 

 

참고도서 : 인생사전(좌우명연구회, 토네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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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삶은 대체로 빈틈없이 메워져 있다. 몇 시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일하러 나가고 퇴근하고 잠시 노닥거리다 하루를 마감한다. 별 문제가 없는 나날이 흘러가는 것 같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피어난다. 때로는 급작스런 불운도 이런 생각이 들게 한다. 
어쩌면 빈틈없이 흘러가는 삶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해지기도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작정 앞으로만 내달릴 것이 아니라, 여유를 가지고 삶을 조용히 지켜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시간의 낭비가 아니라, 삶을 더욱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고 보이지 않는 풍요로움에 눈을 뜨는 길이다.

 

 

 

소크라테스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자, 제자들이 몰려와 말했다.

"스승님, 이게 웬일입니까? 아무런 죄도 짓지 않으셨는데 이렇게 감옥에 갇히시다니요.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때 소크라테스는 "그러게 말이다. 나도 답답하구나."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꼭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와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보통 사람이라면 안절부절못할 상황일 수도 있었지만, 소크라테스는 철학의 대가답게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줄 알았던 것이다. 어차피 감옥에서 분통을 터뜨린다 한들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마음만 상처 입을 뿐이다.

링컨 대통령에게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한번은 그가 백악관에서 직접 구두를 닦고 있자, 친구가 왔다가 그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찌 대통령이 자기 구두를 직접 닦고 있나?"

그러자 링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그럼 미국 대통령은 다른 사람 구두도 닦아야 하나?"

마음에 여유가 있는 사람은 상황에 매이지 않는다. 상황은 그저 바람처럼 그 사람을 스쳐 지나갈 뿐 그 사람과 부딪치지 않는 것이다.

헝가리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리스트가 어느 시골을 여행하고 있을 때였다. 마을 곳곳에, 리스트의 제자가 마을 소극장에서 연주회를 한다는 내용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리스트는 그 사람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한 젊은 여자가 호텔로 리스트를 찾아와 머리를 숙이며 이렇게 사죄했다.

"선생님! 용서해 주세요. 여기서는 선생님의 이름을 빌리지 않으면 저 같은 풋내기 피아니스트는 연주회조차 열 수 없답니다. 생각다 못해 제멋대로 선생님의 이름을 빌렸습니다. 저는 가짜 제자입니다. 이 무례함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때 리스트는 훌쩍이는 그녀의 어깨를 몇 번 토닥거려주고 나서, 그녀를 호텔의 음악실로 곧장 데리고 갔다. 거기서 피아노를 쳐보게 하고는, 미진한 부분을 친절히 바로잡아 주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대는 내 제자가 되었소. 오늘 밤 연주회가 기대되오."

리스트는 음악의 대가이기 이전에 삶을 넓고 멀리 바라볼 줄 아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가 자신을 사칭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비난하고 고발했다고 해서 자신의 음악 수준이 더 높아지거나 수익이 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리어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비좁게 만들어 더 풍부한 예술적 영감이 자라는 토양을 제한했을지도 모른다.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비로소 용서라는 게 가능해진다. 작가 에밀 졸라는 기자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쾌히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기자 둘이 거짓으로 졸라와의 인터뷰를 기사화했다. 급한 김에 인터뷰를 하지 않은 채 글을 썼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졸라는 이들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남의 속을 잘 들여다보나? 앞으로 나와의 회견기는 일체 자네들에게 맡기겠네. 그러니 적당히들 하게. 그러면 나도 괜찮고 자네들도 수고스러울 게 없을 테니까."

세상 그 어떤 사람의 못마땅한 행동도 이해받을 구석이 있다. 설사 그가 연쇄살인범이라 해도 그의 행동을 촉발한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 '이해' 대신 '원칙'을 먼저 들이댄다면, 거기에는 평화가 머물 자리가 없어진다.

어느 수도원장에게 어린 시절 친구가 찾아왔다. 어릴 적에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였다. 오랜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난 자리에서 수도원장은 반갑게 친구를 맞았다. 수도원에 묵던 친구가 한번은 어린 시절에 자기가 한 짓궂은 행동에 대해 말을 꺼냈다. 그러나 수도원장은 그런 기억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친구가 묻길,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인가?"라고 하자, 수도원장이 대답했다.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다만 내가 모두 잊었다는 사실뿐이네." 이 말에 두 사람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당나라 고종 때 적인걸은 대리승을 지냈고 나중에 예주자사와 낙주사마를 역임했으며, 재상의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하루는 고종의 황후 측천무후가 그에게 물었다.

"자네가 여남에서 선정을 베푼 것을 두고, 누군가 나에게 자네의 흉을 보던데.... 누군지 알고 싶은가?'

그러자 적인걸이 대답했다.

"황후께서 그의 말이 옳다 여기시면 신이 고칠 것이고, 소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여기시면 신이 운이 좋은 것입니다. 누가 저를 헐뜯었는지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들은 측천무후는 무척 기뻐하며 적인걸의 넓은 도량을 칭찬했다. 적인걸의 처세는 다른 사람은 물론 자신의 삶까지 온전하게 하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페르시아 제국을 다스리던 어느 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등이 구부정한 한 노인을 만났는데, 노인은 호두나무를 심고 있었다. 왕이 말했다.

"수십 년이나 지나야 열매를 맺을 나무를 무엇 때문에 심고 있는가? 그때가 되면 자네는 이미 죽고 없을 것이 분명한데, 애써 일해 봤자 그 열매를 즐기지도 못할 것 아닌가? 자네가 죽기 전에 수확할 수 있는 것을 심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전하, 소인은 한평생 수많은 나무열매를 먹었나이다. 그것을 심은 사람들 또한 열매를 맛보지 못하고 죽었을 게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지금 나무를 심고 있는 것이옵니다. 나무그늘은 그들에게 따가운 햇볕을 피할 그늘을 제공할 것이며, 나무열매는 그들의 배를 불려주겠지요. 제가 오래된 나무 아래 누워 시원한 그늘을 즐기고 열매를 따먹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말에 탄복한 왕은 노인에게 황금이 든 주머니를 건넸다. 하지만 노인은 이를 사양하며 말했다.

"부디 무례하게 여기지 마소서, 전하. 선물은 사양하겠나이다. 제게는 인생의 늘그막을 편안히 보내기에 충분한 많은 것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나무를 심는 것은 오로지 후손들을 기쁘게 해주려는 것일 뿐, 아무리 값진 황금이라도 내 후손의 기쁨보다 더 큰 보답이 될 수 없습니다. 부디 이 황금을 저보다 더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눠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황금을 마다하는 노인을 뒤로 하고 왕궁으로 돌아가는 왕은 깊은 생각에 잠겨 그저 조용히 말을 몰았다. 황금보다 귀한 마음의 여유에 대해 생각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인슈타인이 미국으로 건너왔을 때, 국보급 과학자 대우를 받았고, 그의 거처는 비밀로 부쳐졌다. 그런데 우연히 근처 초등학교 선생이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 사실을 떠벌릴 것은 아니었는데, 어느 날 그 선생은 자신의 반에서 수학을 못 하는 한 여자아이에게 "어째서 넌 공부를 하지 않니? 네 이웃에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살고 있는데."라고 말하고 말았다.

아이는 옆집에 수학을 잘한다는 이웃을 찾아갔다. 아인슈타인은 뜬금없이 찾아온 여자아이를 선선히 집에 들였다. 아이는 "할아버지, 학교 선생님이 할아버지가 수학을 잘하신다고 말씀하셨어요. 이것 좀 가르쳐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아인슈타인은 연구에 몹시 바빴지만, 아이의 질문에 모두 답했다.

위대한 과학자의 개인 지도로 아이는 수학실력이 늘었다. 그런데 그 비결을 알게 된 선생은 깜짝 놀랐고, 그 사실을 아이의 부모에게도 알렸다. 곤란해진 선생과 부모는 아인슈타인 박사 집에 사죄하러 갔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아니오, 괜찮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가르쳐준 게 없습니다. 반대로 여러 가지를 배웠습니다. 배운 건 제 쪽입니다."

건망증과 여성편력으로도 유명한 아인슈타인.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넉넉함이 있었다. 바이올린 연주에 심취하기도 했던 그는, 클래식 음악에 통 관심이 없다는 사람을 불러다가 음악의 깊은 맛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삶의 넉넉함이란 어떤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경제적인 풍요도, 많은 시간도, 사회적 지위도, 넓은 인맥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쉴 새 없이 굴러가는 삶의 전차에서 잠시 내려, 정지한 상태로 삶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거기에 이미 삶의 여유가 싹트기 시작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고정된 시각만 내려놓는다면, 이미 새로운 가능성이 저 멀리서 당신을 향해 출발한 것이다.

한 사나이가 독일 북부에 있는 쥘트섬으로 가고 있었다. 그 지역의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그는 현지인으로 보이는 말쑥한 차림의 노인에게 '해변으로 가는 지름길'을 물었다.

"이 보시게, 젊은이. 왜 그렇게 서두르시나? 지금 자네가 내린 곳이 어딘지 알기나 하는가?"

"물론입니다. 쥘트섬이잖아요. 아름다운 섬이라고 들었습니다. 해수면 상승과 침식을 비롯한 몇 가지 문제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 질문의 대답도 모두 알겠구먼!"

"무슨 말씀이신지요?"

"빨리 해변으로 나가고 싶다고 그랬지? 조금만 여유를 갖고 여기에 가만히 서있어 보게나. 그러면 해변이 자네에게 올 테니. 저 스스로 말일세!"

노인은 그를 천천히 바닷가로 데려가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네 같은 도시 사람들은 자연이 보내는 신호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 자네가 이미 바다 속으로 들어왔는데도 몸이 젖지 않는다면 자연은 자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글쎄요?"

"썰물이라고 말하는 걸세!"

노인은 조개를 주워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걸 귀에 대보게!"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바다의 파도소리가 들렸다. 노인이 다시 말했다.

"이 보게, 한 가지가 더 있네. 그냥 바닷가에 서 있으면 그런 조개가 없이도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단 말이지!"

우리는 파도소리를 들으려고 바다를 찾아다닌다. 그리고 집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려고 소라를 귀에 들이댄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알게 될 것이다. 여유를 가지면 삶의 파도소리는 저절로 들려온다는 것을 말이다.

 

글_ 조원기(wk@happy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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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프랑스의 곡예사  샤를 블롱댕이 뉴욕타임스 지에 조그만 광고를 냈다.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밧줄을 설치하고, 그 밧줄을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너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폭포의 너비는 335m에 높이는 50m나 되었다.

 

블롱댕이 폭포를 건너겠다는 그날 거의 5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는 밧줄 위에 올라서기 전에 군중에게 소리쳐 말했다. "제가 성공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박수를 쳐주십시오!" 사람들은 마지못해 박수를 치며 환성을 터뜨렸다. 그러자 그는 밧줄에 올라섰고, 모두에게 놀라움을 안겨주며 거뜬히 밧줄을 타고 폭포를 건넜다. 군중은 열광하며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것은 놀라움의 시작이었다.

 

그는 이어 외바퀴 자전거를 타고 밧줄 위를 지나 폭포를 건넜고, 그 다음에는 죽마를 타고 밧줄 위를 건넜다. 심지어 눈을 가리고 폭포를 건너기까지 했다. 도전이 이어질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흥분했고 박수와 환성성도 더 커져만 갔다.

 

박수와 환호성이 잦아들자 그가 다시 물었다.

"제가 어깨 위에 사람을 올려놓고 건너는 것도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계십니까?"

군중은 이번에는 더욱더 엄청난 환호성과 박수로 응답했다. 물론 모두들 그것도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미 그가 지금 얘기한것보다 훨씬 스릴 넘치는 묘기를 부리며 폭포를 네번이나 횡단하는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계속 소리를 질러대며 박수를 치자 블롱댕은 군중을 조용히 시킨 다음 이렇게 물었다.

"좋습니다. 그럼 누가 지원하시겠습니까?"

 

순간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침묵이 이어졌다. 소리를 질러대며 환호성을 터뜨리던 5천 명의 군중들은 그가 어깨에 사람을 올려놓고 안전하게 폭포를 건널 수 있다고 진정으로 믿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믿음을 실제로 보여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그때 그 군중 가운데, 그걸 믿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블롱댕의 친구였다. 그는 블롱댕의 어깨에 올라탔고, 그리하여 사상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어깨에 올라타고서 나이아가라 폭포 위를 횡단한 첫번째 인물이 되었다.

 

 

 

당신에게 어떤 믿음이 있다며, 당신은 그것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참고도서: 꿈을 실현하는 사람들의 15가지 성공비결(스티븟 스콧, 비즈니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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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심리학 교수인 마틴 셀리그먼이 개를 괴롭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는 먼저 개 몇 마리를 전기충격 장치가 설치된 우리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개들이 충분히 아픔을 느낄 정도의 전기충격을 가했다. 고통을 느낀 개들은 몸부림을 치며 우리를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러나 아무리 몸무림쳐도 우리를 벗어날 수 없자, 저항을 포기해버렸다. 개들은 그저 배를 깔고 엎드려 고통스러운 전기충격을 견뎠다.

 

셀리그먼은 이 개들을 다른 우리로 옮겼다. 가운데에 칸막이가 있는 우리였는데, 칸막이를 기준으로 한쪽에는 전기충격 장치가 있지만 다른 쪽에는 없었다. 그 칸막이의 높이는 개가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 우리에서 개들은 전기충격이 있는 쪽에 수용되었다. 그리고 전기충격이 다시 가해졌다. 개들은 잠시 움질했지만 별 저항 없이 바닥에 엎드렸다. 칸막이만 뛰어넘으면 전기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도,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반면 첫 번째 전기충격 실험을 받지 않은 개들은 그 우리에 넣었을 때는 다른 행동을 보여주었다. 이 개들에게 전기충격을 주자, 칸막이를 훌쩍 뛰어 넘어서 전기충격이 없는 반대편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이 현상은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즉, 피할 수 없거나 극복할 수 없는 환경과 실패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경험 때문에,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상황에도 지레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은 무엇보다 큰 장애로 작용한다. 유리병 속에 갇혀 있던 벼룩은 한 동안 뛰어 나가려고 애쓰다가 뚜겅이 있는 것을 알고는 그 높이 안에서만 뛰어오르기를 한다. 뚜껑을 치워도 마찬가지다. 자기 신장의 100배나 뛸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만 것이다. 이런 비슷한 시험은 고양이와 코끼리로도 했는데, 결과가 비슷했다. 불가능이 몸에 익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도 아예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무기력을 학습하여 거기에 젖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처방이 한 가지 있기는 하다. 벼룩을 유리병 속에 넣어 실험한 학자가 그 단서를 제공했다. 병뚜껑이 있든지 없든지 더 이상 병의 높이를 넘어서지 못하는 벼룩을 두고, 병 마닥을 알코올램프로 가열하자 벼룩들은 죽을힘을 다해 최대한 높이 뛰어오르는 것을 목격했던 것이다. 즉, 위기 상황이 '학습된 무기력'을 깨는 것이다. 물론 그건 다소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습된 무기력을 깨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글: 김승일(khansail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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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그야말로 스마트폰 대전이 벌어지고 있다. 휴대전화 시장에서는 무명에 가까웠던 애플이 아이폰으로 전세계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자, 그동안 휴대전화 시장을 주도하던 기업들이 뒤늦게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아이폰이 돌풍을 일으키기 전에 세계 휴대전화 시장에서 가장 큰 점유율을 가진 기업이 노키아였고, 삼성.LG 등이 바짝 추격하고 있었다. 몇 년 사이 삼성.LG는 그야말로 승승장구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만큼, 출시하는 제품마다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시장점유율의 판도를 바꾸어 왔던 것이다.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휴대전화 선도업체들은 스마트폰에 대한 기술이 있었고 이미 출시하기도 했지만, 스마트폰 시장 전망에 대해서는 비관적이었다. 소수의 특수계층만이 쓸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휴대전화 시장에서 신화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애플의 작은 움직임이 가소롭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 틈에 애플은 아이폰 하나로 보란 듯이 휴대전화 시장에 안착했으며, 스마트폰 분야에서는 선도업체가 되었다. 그나마 삼성은 재빠르게 대응했지만, 노키아는 적절하게 대처하는데 실패했고, 그 대가로 시장점유율의 일부를 내놓아야만 했다. 급속도로 커지고 있는 스마트폰 시장으로 인해 또 한 번 시장점유율 순위가 바뀔 수도 있게 되었다. 모토롤라와 노키아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한때 모토롤라가 휴대전화 시장을 호령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날로그 방식의 휴대전화가 상용화되던 시절 모토롤라는 부동의 1위였다. 그러다 마치 지금의 스마트폰이 등장하듯 디지털 방식으로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오만해진 모토롤라는 시장의 요구를 무시했다. 결국 일찌감치 디지털 방식에 집중했던 노키아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고, 삼성․LG에게도 추월당했으며 지금은 애플에게마저 추월당할 위기에 놓여 있다.

아날로그 방식의 스타텍 모델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모토롤라는 당시 디지털 기술에서도 선도적인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방식에 대한 통신사나 소비자의 요구를 모두 묵살해 버렸다. 디지털 방식에 대해서 모토롤라가 대처했던 방식을, 오늘날 노키아가 스마트폰에 대해 그대로 따라한 셈이다. 어쩌면 이것이 정상에 오른 기업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운명인지도 모른다.

순자에 보면 '만즉복滿則覆', 즉 가득차면 전복된다는 말이 나온다. 공자가 노나라 환공의 묘를 찾아갔을 때 환공이 평생 곁에 두면서 자신을 돌아보았던 '기울어진 그릇'을 보았다. 그 그릇은 속에 물이 없이 비었을 때는 기울어지고, 물을 넣으면 수평을 이루며, 가득 채우면 훌렁 뒤집어진다. 공자는 그것을 예로 들어 사람의 도리를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사물은 차면 이지러지므로 가득 찬다는 것은 오히려 손실을 초래한다. 사람도 득의에 차서 거드름을 피우는 자는 반드시 망한다.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 자신만의 정점에 도달한다. 사람에 따라서 그 정점의 높이와 규모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정점에서 많은 경우 초심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로부터 급속히 추락하게 되고, 남은 인생 중 오랜 기간을 힘들게 보내야 한다.

한 때 잘나가다가 지금 매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얘기가 '당시에는 앞으로도 계속 지금처럼 잘 될 줄 알았다. 정말 뭐든지 하면 다 이루어질 것처럼 느껴졌다'라는 것이다.

모든 게 순조로울 때는 미래의 힘든 시기를 상상하기 힘들고, 미래를 대비하기 힘들다. 그래서 추락이 그 사람에게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것이 되고, 어떤 대비도 되어있지 않기에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드는 것이다.

인생을 지혜롭기 살기 위해서는 정점 관리가 필요하다. 정점에 이르렀다고 생각될 때 겸허하게 자신을 되돌아본다면, 그 순간 그곳은 더 이상 정점이 아니게 된다. 따라서 기울 일이 없으며, 그 사람에게는 더 올라갈 곳이 있는 것이다. 어느 날 마음이 교만해진다면 그 사람이 이룬 것과 상관없이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에서 정점이 되는 것이다. 하늘에 올라 있다면 땅으로 추락할 것이고, 땅에 있다면 바닥으로 내팽개쳐질 것이다.

결국 세상이나 인생에는 올라야 할 정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태도 속에 정점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기울어진 그릇'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 본 환공은 정상에 올랐지만 끝내 정점에는 오르지 않았기에, 지혜로운 인생을 마감한 것이리라.

 

 

글 : 권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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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출신의 젊은 미술가 세배지에게 한 정치인이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했다. 초상화를 본 정치인은 자신과 닮지 않았다며 약속한 500달러를 지불하지 않았다. 세배지가 말했다.

 

"그림이 선생님과 닮지 않았다는 것에 서명해 주시겠습니까?"

 

얼마 후 미술관을 찾은 정치인은 세배지의 그림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 그 초상화의 제목은 이랬다.

 

<어느 도둑놈의 초상>

 

정치인은 그 그림을 원래 가격의 열 배를 주고서 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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