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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나두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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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와 농부

Mailing Article / 2009. 10. 19. 07:35

어떤 무사가 자신이 섬기던 주군을 잃고, 술집에 가서 심각하게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한 농부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가 그 무사의 탁자를 엎지르고 만다. 농부는 급히 용서를 빌었지만, 무사는 참지 못하고 결투 신청을 했다. 무사는 자신을 피하면 끝까지 쫓아가서 끝장을 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는 돌아갔다.

 

결투 날짜는 일주일 후였다. 농부는 일단 근처 검도장을 찾아가 검도 사범에게 이런 사정을 이야기했다. 검도 사범은 승산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다만 죽더라도 그 무사와 함께 죽을 방법을 일러주겠다고 했다. 검도 사범은 단 한 가지의 자세와 하나의 베기 동작만 반복하여 가르쳤다.

 

"무사는 공격하기 전에 당신의 실력을 알아보려 할 것이요. 하지만 절대 움직이지 마시오. 그에게 다가가거나 칼을 휘두르지도 말고 기다리기만 하시오. 그가 정말 당신을 죽이려고 칼을 들 때에만 움직이도록 하시오."

 

어느 모로 보나 살아남기는 글렀다고 생각한 농부는 어쩔 수 없이 결투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베기 동작만 줄곧 연습했다.

 

마침내 결투의 시간이 다가왔다. 마주한 무사는 노련한 자세로 다가왔다. 그리고 농부를 가운데 에 두고 원을 그리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농부를 자극하려고 허점을 살짝 보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농부는 꼼짝하지 않고 검객을 유심히 바라볼 따름이었다. 무사를 벨 기회는 오직 단 한번뿐이며, 두 번의 기회는 없을 것이었다.

 

한참 후 무사가 잠시 뒤로 물러서더니 앞으로 달려 나왔다. 이제 정말 칼을 휘두를 참인 듯 했다. 하지만 칼은 공중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고요가 뒤따랐다. 무사는 농부의 얼굴에서 그 어떤 공포나 두려움도 읽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칼을 거두며 물러섰다.

 

"내가 도전했을 때, 당신은 시골뜨기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고 나는 분명 당신을 무시하고 있었소. 하지만 오늘 나는 그대의 방어를 깨뜨릴 수 없었소. 어떤 공격도 나를 함께 버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소. 당신은 분명 무사의 정신을 지녔고, 나는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오. 용무는 여기서 끝났소."

 

그는 깊이 허리를 숙여 절을 하고 돌아서서 가 버렸다. 농부는 여전히 그대로 정지한 채 서 있었다. 그의 신경은 오직 한 번의 베기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참고도서: 무도의 전설과 신화(피터 루이스,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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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결혼할 때 부모 모시겠다는 여자 택하지 마라.

너는 엄마랑 살고 싶겠지만

엄마는 이제 너를 벗어나

엄마가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단다.

엄마한테 효도하는 며느리를 원하지 마라.

네 효도는 너 잘사는 걸로 족하거늘….

네 아내가 엄마 흉을 보면

네가 속상한 거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걸 엄마한테 옮기지 마라.

엄마도 사람인데 알면 기분 좋겠느냐.

모르는 게 약이란 걸 백 번 곱씹고

엄마한테 옮기지 마라.

내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널 배고 낳고 키우느라 평생을 바쳤거늘

널 위해선 당장 죽어도 서운한 게 없겠거늘…

네 아내는 그렇지 않다는 걸 조금은 이해하거라.

너도 네 장모를 위하는 맘이 네 엄마만큼은 아니지 않겠니.

혹시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거든 조금은 보태주거라.

널 위해 평생 바친 엄마이지 않느냐.

그것은 아들의 도리가 아니라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독거노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는데 자식인 네가 돌보지 않는다면

어미는 얼마나 서럽겠느냐.

널 위해 희생했다 생각지는 않지만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는 자책이 들지 않겠니?

아들아!

명절이나 어미 애비 생일은 좀 챙겨주면 안되겠니?

네 생일 여태까지 한 번도 잊은 적 없이

그날 되면 배 아파 낳은 그대로

그때 그 느낌 그대로 꿈엔들 잊은 적 없는데

네 아내에게 떠밀지 말고 네가 챙겨주면 안되겠니?

받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잊혀지고 싶지 않은 어미의 욕심이란다.

아들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이름만 불러도 눈물 아릿한 아들아!

네 아내가 이 어미에게 효도하길 바란다면

네가 먼저 네 장모에게 잘하려므나.

네가 고른 아내라면

너의 고마움을 알고 내게도 잘하지 않겠니?

난 내 아들의 안목을 믿는다.

딸랑이 흔들면 까르르 웃던 내 아들아!

가슴에 속속들이 스며드는 내 아들아!

그런데 네 여동생 그 애도 언젠가 시집을 가겠지.

그러면 네 아내와 같은 위치가 되지 않겠니?

항상 네 아내를 네 여동생과 비교해 보거라.

네 여동생이 힘들면 네 아내도 힘든 거란다.

내 아들아 내 피눈물 같은 내 아들아!

행복이 네 행복이 아니라 네 행복이 내 행복이거늘

혹여 나 때문에 너희 가정에 해가 되거든 나를 잊어다오.

그건 어미의 모정이란다.

너를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어미인데

너의 행복을 위해 무엇인들 아깝겠느냐.

물론 서운하겠지 힘들겠지 그러나 죽음보다 힘들랴.

그러나 아들아!

네가 가정을 이룬 후 어미 애비를 이용하지는 말아다오.

평생 너희 행복을 위해 애써 온 부모다.

이제는 어미 애비가 좀 편안히 살아도 되지 않겠니?

너희 힘든 건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다오.

늙은 어미 애비 이제 좀 쉬면서 삶을 마감하게 해다오.

너희 어미 애비도 부족하게 살면서 힘들게 산 인생이다.

그러니 너희 힘든 거 너희들이 헤쳐가다오.

다소 늙은 어미 애비가 너희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건 살아오면서 따라가지 못한 삶의 시간이란 걸

너희도 좀 이해해다오.

우리도 여태 너희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니.

너희도 우리를 조금,

조금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면 안 되겠니?

잔소리 같지만 너희들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렴. 우린 그걸 모른단다.

모르는 게 약이란다.

아들아!

우리가 원하는 건 너희들의 행복이란다.

그러나 너희도

늙은 어미 애비의 행복을 침해하지 말아다오.

손자 길러 달라는 말 하지 마라.

너보다 더 귀하고 예쁜 손자지만

매일 보고 싶은 손자들이지만

늙어가는 나는 내 인생도 중요하더구나.

강요하거나 은근히 말하지 마라.

날 나쁜 시어미로 몰지 마라.

내가 널 온전히 길러 목숨마저 아깝지 않듯이

너도 네 자식 온전히 길러 사랑을 느끼거라.

아들아 사랑한다.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

그러나 목숨을 바치지 않을 정도에서는

내 인생도 중요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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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50이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주변 사람들이 철이 없다고 놀리지만 호칭을 바꿀 생각은 없다. 그만큼 엄마와 어머니가 주는 뉘앙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라는 존재의 위대함이 크게 느껴진다. 엄마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한없는 위로와 평화를 준다.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외면해도 엄마는 언제나 내 편에 서 줄 사람이다. 무슨 얘기든 할 수 있고, 아무리 힘들어도 그 분만 있으면 삶의 고됨도 다 잊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전화도 안 하고, 찾아 뵙지도 못한다. 먹고 사는 문제에 쫓겨 만나도 다정다감하게 대하지 못한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막상 뵙게 되면 퉁명스럽게 대하는 내 자신을 보곤 한다. 엄마는 언제까지 제 곁에 있을거란 믿음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신경숙의 자전적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소개한다.



내용은 단순하다. 어느 날 엄마가 실종된다. 엄마는 나이도 들고 몸도 성치 않다. 가끔 정신을 놓기도 한다.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 생신을 치르러 서울에 올라온 길에 벌어진 일이다. 자식들이 시골에 내려가는 것보다는 자신들이 서울에 올라오는 것이 자식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올라왔는데 아버지가 지하철 역에서 잠시 한 눈을 팔다 사라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집안은 난리가 난다. 처음에는 왜 서울역에 마중을 나가지 않았느냐며 서로를 원망하다 정신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엄마를 찾아 나선다. 전단지를 돌리고 인터넷 광고를 하고 엄마를 보았다는 사람들을 찾아 온 식구가 사방을 헤맨다. 그러면서 서서히 엄마의 존재를 느끼기 시작한다.



정말 소중한 것은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물, 공기, 평화 같은 것이 그렇다. 늘 거기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다. 엄마라는 존재도 그렇다. 엄마는 늘 자식 주변에 머문다. 학교 갔다 오면 있고, 전화 걸면 있고, 한시도 떨어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귀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여기 주인공들이 그렇다. 엄마의 실종으로 가족들은 엄마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깨닫게 된다. 여러 명의 화자는 나름 엄마를 추억하고 엄마에 관한 얘기를 풀어낸다. 친구처럼 의지하며 살던 큰딸, 엄마의 모든 소망과 꿈을 먹고 자란 큰아들, 자식 기르는 기쁨을 알게 해준 작은딸, 평생 살림을 아내에게 떠맡기고 밖으로만 돌던 아버지…



흔히 딸들은 엄마에게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래요”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럴 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나도 지금의 나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마로 산다는 건 그런거다. 너도 엄마가 되보면 알 것이다.”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서울에 사는 큰딸은 마음과 달리 곱게 말을 하지 않는다. 늘 볼멘소리를 하고 음식을 보내와도 감사해하기 보다 쓸데없이 이런 것을 왜 보내느냐고 윽박지른다. 결혼도 하지 않고 속을 썩힌다. 그러다 엄마의 실종 이후 엄마 심정을 헤아리며 후회한다. 엄마가 얼마나 섭섭했을까? 외로웠을까? 말이 하고 싶었을까? 자신을 서울에 데려다 주고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갈 때가 지금의 자기 나이와 같다는 것도 깨닫는다. 초경을 하기도 전에 결혼 해 다섯 아이를 낳고 애 키우느라 삶이 사라진 여인. 일생이 희생으로 점철되다 실종 당한 여인. 그 엄마에게 자식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였을까? 엄마에게 삶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엄마가 옆에 있을 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까. 딸인 내가 이 지경이었는데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고독했을까. 누구에게도 이해 받지 못한 채로 오로지 희생만 해야 했다니 그런 부당한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을까.



아들의 추억도 가슴 아프다. 아들은 엄마의 인생 그 자체였다. 엄마는 큰 아들의 성공에 올인 하지만 아들은 먹고 살기 바빠 그런 엄마를 까맣게 잊고 산다. 그러다 실종 후 첫 직장인 동사무소 숙직실에 졸업증명서를 직접 갖고 올라와 같이 자면서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너는 내가 낳은 첫 애 아니냐. 고단헐 때면 방으로 들어가서 누워 있는 니 작은 손가락을 펼쳐보군 했어. 발가락도 맨져보고. 그러구 나면 힘이 나곤 했어. 신발을 처음 신길 때 정말 신바람이 났었다. 니가 아장아장 걸어서 나한티 올 땐 어찌나 웃음이 터지는지 금은보화를 내 앞에 쏟아놔도 그같이 웃진 않았을 게다. 학교 보낼 때는 또 어땠게? 네 이름표를 손수건이랑 함께 니 가슴에 달아주는데 왜 내가 의젓해지는 기분이었는지.” 실종 후 자신의 성공을 향해 달리느라 가장 가깝고 소중한 어머니를 등한시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작은 딸도 그런 얘기를 한다. “언니.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날이 우리들에게 올까? 엄마를 이해하며 엄마의 얘기를 들으며 세월의 갈피 어딘가에 파묻혀버렸을 엄마의 꿈을 위로하며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올까? 하루가 아니라 단 몇 시간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엄마에게 말할 테야. 엄마가 한 모든 일들을, 그걸 해낼 수 있었던 엄마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엄마의 일생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고”



“엄마는 식은 밥을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생선 대가리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늘 밥맛이 없는 걸로 알았어요” 대충 이런 내용의 시를 읽은 적이 있다. 그만큼 우리에게 엄마란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래서 엄마도 인간이란 사실을 잊는다. 하지만 엄마도 인간이다. 이 소설 마지막 부분에 엄마에게도 숨겨둔 사랑이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극적 반전이다. 이런 대목이다. “이젠 당신을 놔줄 테요. 당신은 내 비밀이었네. 누구라도 나를 생각할 때 짐작조차 못할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네. 아무도 당신이 내 인생에 있었다고 알지 못해도 당신은 급 물살 때마다 뗏목을 가져와 내가 그 물을 무사히 건너게 해주는 이였재. 나는 당신이 있어 좋았소. 행복할 때보다 불안할 때 당신을 찾아갈 수 있어서 나는 내 인생을 건너올 수 있었다는 그 말을 하려고 왔소. 나는 이제 갈라요.”



신이 갈 수 없는 곳에 대신 엄마를 보냈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삶이 힘들고 무언가에 의지하고 싶은 분은 엄마를 찾아가 안아주고 그 분의 위로를 받으시길 바란다. 엄마가 안계신 분은 엄마를 생각하며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한근태 대표 kthan@ass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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